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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3)헝가리


헝가리로 향하는 차창밖에는 포플러 나무가 웅성거리며 서있었다.

마치 다른 나무가 껴달라는 것을 박절하게 뿌리치고 그들만의 세계를 이루듯......

포플러 이파리는 자그마한 바람에도 실성한 여인네 훌렁 훌렁 속곳 내비추듯

이파리가 팔랑거린다.



헝가리 대평원으로 들어서자 도는 듯 마는 듯 풍력발전기가 게을러 터져있다.

띄엄띄엄 언덕배기에 모여 있는 삼각형 지붕에는 하나 둘 태양광 발전기가 앉아있다.

살진 민들레와 유채 꽃이 밀밭과 어우러진 평원은 끝 간 데 없이 이어졌건만

농부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물에 발 담그는 논농사만큼 힘든 일 또한 있을까?

만약 내가 어중뜨기 화가라면 아마 노란 물감이 턱없이도 부족하겠다.

몇 해 전 터키 평원에서 루주를 짙게 바른 개양귀비가 화류계 여인처럼 나를 유혹했다면

이는 사랑도 고백할 줄 모르는 숫처녀처럼 다가왔다.




부다페스트로 들어섰다.

평원을 달려온 탓인지 북적거리는 도시가 오히려 생경하다.

영웅광장에 들어서 시퍼렇게 녹슨 조각상 앞에서 셔터를 눌렀지만 나는 그들을 모른다.

우리나라 영웅도 제대로 모르는데 그들을 알 턱이 없고 가이드가 설명해줘도

발음조차 요상한지라 돌아서면 잊어먹을 낯선 영웅들!

다만 높이 솟은 가브리엘 천사 조각상만 기억할 뿐......

인증샷 몇 번 찍자 벌써 리무진에 올라 다음 장소로 이동할 시간이란다.

배낭여행을 왔다면 훈련소 훈련병처럼 끌려다니지 않을텐데......

사실 배낭여행 말을 빼냈지만 아내를 이길 수 없었다.

나이 들수록 여자들의 입김이 거세어지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꼬라지로 봐서는 내 생전에 배낭여행은 못할 지도 모른다.


유럽은 어디나 장난감 같은 전차와 자동차가 사이좋게 공존한다.

구식택택 먹은 옛것이 관광객을 유혹하는 자산이 되다니......

이름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도 구식택택 먹은 것을 말한다.

도심지에는 가로등주가 보이지 않고 인근 건물에서 조가선(전선지지용 강철 선)을 끌어

공중에 가로등을 매달아 놨다.

우리 같으면 사유재산인 건물 상한다고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우리도 개화기 그 전차를 그대로 두었더라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었을텐데......

낭만과 여유를 도둑맞은 것 마냥 가슴 한 구석이 휑하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는 다뉴브강을 경계로 부다지역과 페스트지역으로 나뉘어져있다.

독일에서는 도나우강으로 불리는 2천5백Km에 이르는 다뉴브강은 동유럽을 적시고

흑해로 빠진다.

게레르트 언덕에서 내려다본 다뉴브강은 마치 우리 한강과 닮았다.

멀리 보이는 섬이 밤섬처럼 자리하고 부다지역(구도심)과 페스트지역(신도심)을 잇는

세첸의 다리가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세첸의 다리는 이슈트만세체니 백작이 아버지 장례식을 참석하기 위해

강이 얼기를 일주일동안 기다린 후 다리를 놓게 되었단다.



그 옛날!

신기와 같이 말을 잘 타는 몽골군이 이곳 부다페스트까지 점령하였단다.

유목민이 정주민을 점령한 최초의 사건이자 최대의 이벤트였다.

몽골 장군 바투는 8만의 기병으로 20만 기병을 거느린 헝거리 공국 벨라 4세를

헝가리 대평원에서 무찔러 대제국을 건설하였다니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가죽옷을 입은 기마병과 철갑을 입은 기마병중 누가 더 민첩할까?

철이 오히려 가죽 앞에 힘을 못 쓰는 실용이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역사는 승리자가 쓰고 힘 있는 자가 전리품 나눠 갖듯 그렇게 흘러간다.

다뉴브강은 그때나 지금이나 말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근데 중세의 그 기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인생은 그렇듯 물처럼 흘러가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