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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정보/IT 단상

사라져버린 혼 불!

‘삐우웅~ 딱!’

몇 해 전 철지난 대천 해수욕장을 찾아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었다.

노모와 당신이 나은 자식들과 도합 20여명이 넘는 나들이였다.

그날 밤 우리는 폭죽을 터트리며 잠시 동심으로 돌아갔다.

깜깜한 밤하늘을 향해 꼬리를 물고 올라가던 폭죽들이 종당에는

딱 소리를 내며 사그라졌다.

 

난 폭죽을 볼 때마다 혼 불을 떠올리곤 한다.

어릴 적 여름밤을 식히던 날 느닷없이 꼬리가 달린 불꽃이 전봇대 위로

날아가는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앗! 불이다.”

그 자리에는 사촌과 동생들 여럿이 앉아있었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다.

왜 내 눈에만 보였는지 모르지만 그 불은 비스듬히 날다가 사라졌다.

물론 폭죽이 혼 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빠른 속도로 날아오르지만

하여튼 그 혼 불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우리 손으로 만든 나로호가 하늘을 향해 치솟던 모습은

어릴 적 내 눈에만 보였던 그 혼 불을 연상시켰다.

꽁무니에서 불꽃을 내 뿜으며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하얀 로켓은

영락없는 어릴 적의 그 혼 불이었다.

 

하지만 혼 불에 걸린 열망도 잠시, 녀석은 아무 대답도 않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니 가슴 한 켠에 짠한 슬픔이 묻어났다.

나로호가 우주궤도에 안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공계에 종사하는

사람뿐만 아니라온 국민의 열망이었다.

 

과학기술은 하루아침에 눈부시게 발전할 수 없다.

카운트다운을 하다말고 귀때기에서 하얀 연료를 내뱉던

나로호를 바라보며 우리 과학기술인의 한계가 저기까지인가 싶어

안타깝기 짝이 없어 이공계인 나는 숨죽이며 여론을 살폈다.

일부의 혹평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곧 이어 발사 될 거라는 기대에 차있었다.

실패의 원인이 소프트웨어에 의한 버그였다고 밝혀져 하드웨어적인

결함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국장을 치루자마자 서두르듯 쏘아 올렸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나로호가 하늘을 나르기 위해서는 그 중심부에 프로그램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7분 50초 이후의 상황을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했다.

발사 후 215초만에 페어링이 분리되고 17초 후에는 1단 로켓이 분리되고

다시 8초 후에는 2단 로켓이 분리된다는 정교한 프로그램에 의해 로켓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서 예외(Exception)처리 문장 한 줄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시스템의 특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나라는 자칭 타칭 IT강국이라며 뽐내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잘 깔린 인터넷 망과 인터넷 사용인구가 다른 나라보다 많고 휴대폰이나

반도체 시장점유율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정말 IT강국일까?

IT강국과 소프트웨어 강국의 차이는 무엇일까?

흔히 인도를 소프트웨어 강국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IT강국은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을 빼 놓을 수 없다.

휴대폰도 세탁기도 소프트웨어 없이는 동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핵심 소프트웨어는 인도에 밀리고 대졸 신규인력은 2-3년이 안되어

프로그래머의 길을 포기하는 형편이다.

프로그래머의 길로 들어서는 순간 밥 먹듯이 야근 하고 발주자에게 치어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다른 길로 접어드는 것이 낫다는

영악한 젊은이들의 생각이 곧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현주소다.

 

이제 하늘로 올라가 어딘가로 정처 없이 달려가고 있을,

아니면 지구 어딘가로 고꾸라 박혔을지 모를 나로호의 비극적인 운명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과학기술자들을 다독거려주고 이공계를 선호하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십자 안전마크가 그려진 작업복을 입고 시내를 활기차게 걷는

젊은이들이 부러워지는 그런 세상이 올 수 있도록......

(09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