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에서 승용차로 5시간이 걸리는 자이푸르라는 도시로 향했다.
새벽밥을 차리는 게스트하우스의 인도 처녀들을 보니 어린 시절
입을 해결하기 위해 친척집으로 식모살이를 떠나던 우리의 누이들이 떠오른다.
내일이면 모든 여정을 마치고 떠나야하는 짧은 인연!
인연이 별것이겠느냐만 이 소녀들을 다시금 볼 수 없으니 왠지 가슴이 휑하다.
동트는 아침 도로 가에서는 노숙을 하던 사람들이 담요를 개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먹고 살까?
인가 가까이에서 노숙하면 될 텐데 이렇게 먼 곳에서 밤이슬을 맞는 이유가 뭘까?
이방인인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숨겨진 사연이 있는 걸까?
자이푸르로 가는 시골마을 휴게소에는 마치 시집가는 신부가 연지곤지를
곱게 바르고 다소곳이 앉아있듯 화려하게 치장한 화물트럭들이 쉬고 있었다.
언젠가 필리핀 여행에서 보았던 지푸니라는 삼륜차가 떠오른다.
그곳에서도 지푸니를 화려하게 치장하였는데 유치한 것도 멋일까?
인도에서는 앞서가는 차에게 비켜달라고 크랙슨을 눌러도 실례가 아니다.
오히려 추월할 때는 클랙슨을 눌러달라며 ‘Blow horn'이라는 글씨를
차 꽁무니에 인쇄하고 다니니 말이다.
인도의 도로에는 원시사회와 첨단사회가 공존하고 있었다.
코끼리와 낙타에 짐을 싣고 느릿느릿 걷는가 하면 최고급 승용차 사이로
릭샤라 부르는 삼륜 자전거와 삼륜 오토바이가 곡예 하듯 달리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인력거꾼이 날품을 팔던 우리의 한 맺힌 그 시절이 떠오른다.
이들의 가난은 언제쯤 해결될 수 있을까?
가난은 나랏님도 어찌 못하는데......
서울역 노숙자들도 해결하지 못하는 주제에 남의나라 걱정을 하고 있다니
날씨가 너무 더워 더위를 먹었나?
휴게소에서 맛본 ‘cheese Dosaa’ 라는 누룽지는 소금에 절인 것처럼 짰다.
음식이 짠 이유는 혹시 땀을 많이 흘리므로 염분을 보충하기 위함이 아닐까?
날이 얼마나 더운지 이름 모를 새가 날개 죽지를 열고 입을 벌리고 있다.
이런 날씨에 인도인들은 무슨 낙으로 살아갈까?
이렇게 더운데 혹시 성생활은 어떻게 할까?
느닷없이 그들의 밤 문화가 궁금해진다.
내가 정말 더위 먹었나?
휴게실 화장실에 남자는 ‘He’ 여자는 ‘She’로 표기해 놓았다.
주 장관을 만나기로 하였으나 3시간이 지난 후에야 간신히 들어선
그의 사무실은 으리으리하리라는 상상을 비웃기라도 하 듯 검소했다.
대부분의 사무실이 그렇듯 책장이 없었고 손님과 커피를 마실 접대용 소파조차
없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소파 대신 책상 앞에 마주보고 앉아 얘기 하도록 되어있었다.
어찌 보면 취조 받는 죄인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실용적이었다.
우리와 얘기를 나누는 중에도 비서관이 결재 서류를 가지고 드나들었다.
희한한 것은 결제서류를 끈으로 묶어오고 장관은 끈을 풀어 결재를 한 후
다시 끈을 묶어 뒤로 던져 버리는 것이었다.
이사람 성격이 원래 그런지 아니면 인도의 모든 고관들은 결재 후 서류를
뒤로 던지는 것을 위엄으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얼마 후 비서관은 땅바닥에 떨어진 결재 서류들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나간다.
우리나라의 전자결제 시스템을 팔아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내가 벌써
장사꾼 기질이 배었나 싶어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자이푸르 장관을 만난 것으로 인도에서의 공식 일정이 모두 끝났다.
이제는 영어를 못해 받는 스트레스가 더 이상 없어 좋다.
난 드디어 자유인이 된 것이다.
전통재래시장인 동문시장을 들러 이 곳 저 곳 기웃거리다보니
어슬렁거리는 소가 실례를 해놓은 똥을 릭샤가 밟고 지나가 도로에는
푸른 똥이 길게 묻어있다.
시장으로 들어서자 물건을 사라며 젊은이들이 잡아끈다.
구경을 하고 싶어도 혹시나 안사면 시비를 붙을까봐 눈길을 주기도 거북하다.
거리는 지저분하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사탕수수를 압축하여 즙을 파는가 하면 즉석 아이스케키도 팔고 있었다.
아이스케키는 V자형 양철 깔때기에 미숫가루 물처럼 걸쭉한 국물을 넣고
얼음 통 속에 꽂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꺼내면 그만이었다.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자 함께 한 인도인 친구가 아이스케키를 먹겠느냐며
눈짓을 한다.
그 나라의 문화를 알려면 현지인과 스킨십은 물론 음식을 가리지 않아야한다는
지론대로 그와 나는 아이스케키를 사이좋게 빨아 먹으며 이 곳 저 곳 기웃거렸다.
한국에서라면 이 체면에 아이스케키를 먹으며 길거리를 걸어갈 수 있을까?
아이스케키는 정말 고소하고 맛이 있었다.
국물의 원료에는 아마 땅콩도 섞인 모양이다.
아이스케키 덕분에 더위를 식히고 막대기를 버리자 내가 먹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소년이 냉큼 막대를 주어들고는 도로 아이스케키 주인에게
가져다준다.
아무려면 어떨까?
우리도 60년대에 아이스케키 막대를 재활용하지 않았던가?
인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낼 호텔로 가는 길목에서 처음으로 물을 만났다.
주변 정리가 되지 않은 저수지 가에서는 낙타와 코끼리를 부리는 청년이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사진 한 컷 찍으려다 생각에도 없던 낙타를 난생 처음 타게 되었다.
기우뚱거리며 걷는 낙타와 보조를 맞추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손잡이도 엉성하여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아 잔뜩 긴장을 하고보니
몸살 날 것만 같았다.
인도 민속촌과 맞붙은 팬션 형태로 꾸며놓은 호텔은 동화의 나라 스머프를
연상시킨다.
조용한 시골 민속촌으로 들어서자 이마에 붉은 점을 찍어준다.
원래 붉은 점은 빈디라 하여 기혼 여성들이 찍는다는데 우리를 여자로 잘못 봤나?
민속촌 곳곳 어둑한 조명 아래에서는 갖가지 공연을 벌이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뾰족한 침 위로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걷는가 하면
어줍잖은 마술을 한다며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열대야의 인도의 밤은 또 이렇게 깊어 갔다.
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