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이 휘이익!
겨우내 솔바람 말달리기 하던 곳
관악 불산(火山)이 심장을 불태운다.
기골 장대한 나무 아래
세 들어 사는 진달래 꽃!
수채화 물감 아무렇게나
찍어 바른 듯 볼을 붉힌다.
관악산에 불났다.
진달래 꽃불 붙었다.
똑 같은 산이건만 찾을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건
사람들이 그리워서일까?
그 흔한 동동구루무 없이도 정성껏 몸을 가꾸는 산은 누이 같고
어머니 같다.
산 벚꽃이 눈을 뜨기 시작한 관악산에 술 취한 화백이 연분홍 물감
찍어 바르듯 이 곳 저 곳 틈바구니에서 애잔한 진달래꽃 초경 맞은
처녀처럼 볼을 붉힌다.
‘춘식아. 산꽃 폈어야’
‘엉? 그래? 가보자’
꼴망태 짊어지고 날 무딘 조선낫 감춰 오르던 그 산에도 진달래가 폈을까?
산림녹화라는 글귀 앞에서 차마 솔갱이 목은 베지 못하고 솔가지 쳐내는
것도 무서워 말라버린 덤불을 베어오던 소년은 어디 갔을까?
지나고 보니 가난했던 그 때는 맨 먼저 진달래가 봄을 알렸다.
가로수가 포플러였던 그 때가 옛날인가?
이제 벚꽃이 가로수를 대신하니 팔자가 늘어진 건가?
괭이 메고 칡뿌리 찾아 헤매던 유년의 입술을 벌겋게 만들던 꽃!
막걸리 한 병 꿰차고 산을 오르니 사치인 듯 부끄럽다.
그러고 보면 진달래는 화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피어나고 보살핌을 받지 않는 순정을 간직한 소녀 같은 꽃이다.
이제 이 꽃이 지고나면 화냥기 가득한 철쭉이 피어나리라.
꽃받침에 찐득한 화장을 한 철쭉은 화류계 여인 싸구려 화장품 분 냄새
풍기듯 길손들을 유혹할 것이다.
왜 사람들은 철쭉제라 이름 붙여 그를 좋아할까?
왜 사람들은 술 취해 입에 구렁내 풍기는 여인 같은 그 꽃을 좋아할까?
진달래 축제라고 이름붙이기가 좀 머시기한 것일까?
내면의 세계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겉만 번드르르한 속물 같은
철쭉 앞에 양심을 판다.
이제 그가 가고나면 난 첫사랑을 놓친 것처럼 또다시 가슴앓이를 할 것이다.
쫓아오는 여름 앞에 속절없이 쫓겨 가는 세월이 야속하기 때문이다.
나를 유년으로 다시 돌려준다면 무엇을 할까?
스쳐가는 세월 앞에 인생이 덧없다.
산 벚 꽃 화사한 옷감에 칠칠맞게 초경을 묻히는 진달래를 누가 탓하랴.
08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