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방학이 끝나던날!
방학이 끝나갑니다.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서늘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동안 너무 신나게 뛰어 놀아 숙제 범위가 어딘지조차 가물가물합니다.
물론 방학 책과 곤충채집은 다 했지만 국어와 산수는 이제 시작입니다.
그동안 너무 놀았던 것이 후회되고 마음이 다급해져 요 며칠동안 마루에 엎드려
공부를 하려니 온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플라스틱 책받침을 노트에 끼우고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국어 숙제를 했습니다.
사생(사회)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지만 그래도 국어는 자신 있는 과목입니다.
방에서 놀고 있던 동생이 문턱을 넘어 기어오더니 꼬막손으로 공책을 만지며
공책위에 침을 질질 흘립니다.
‘에이! 저리가!“
“으앙!”
몇 번 밀치다가 하도 귀찮게 하여 한대 쥐어박았더니 목청껏 울어대지만
어머니는 모른 척 하십니다.
잠시 공부에 열중(?)하는 사이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호박 떨어지듯 동생이 토방으로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동생의 이마에는 어느새 남붕(1)이 나고 말았습니다.
”애기 하나 똑바로 못 보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쏜살같이 달려와 동생을 보듬고는 내 볼기짝을 철썩 두들깁니다.
말도 않고 삐져 있으니 춘식이가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다 말고 깜짝 놀라 돌아갑니다.
아직 국어 책을 잘 못 읽는 녀석이 숙제해놓은 공책을 베끼러 온 참이었습니다.
산수는 덧셈은 쉬운데 뺄셈은 쉽지가 않습니다.
빼기를 할 땐 남의 눈에 보이지 않게 손가락을 동원해야 답이 정확 합니다.
하지만 分數는 아무리 해도 이해가 안 됩니다.
왜 1/2이 1/4보다 큰지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아버지가 우려(2)놓은 감을 칼로 잘라가며 설명해 주셨지만 난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아버지도 화가 나신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시는 바람에 주눅이 들어
하나도 머릿속에 안 들어왔던 것입니다.
공부하다 말고 엎드려 잠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깨우시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먼동이 트는 듯 어둑어둑합니다.
난 주섬주섬 책보를 챙기고 학교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코를 쥐어 비트는 이상한 취미를 가진 독한 선생님께 혼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합니다.
마당에서 돌확(3)에 보리쌀을 갈던 어머니가 커다랗게 웃으십니다.
1) 남붕 : 이마나 머리를 부딪쳐 혹이 난 것, 전라도 사투리
2) 우리다 : 어떤 물건을 액체에 담구어 맛이나 빛깔 따위가 빠져 나오도록 하는 것
3) 돌확 : 돌을 파 만든 절구, 남쪽에서는 학독이라고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