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속에서 잠자는 인내
‘인내’라는 단어가 적힌 그 색종이는 3년 이상 내 지갑 속에 숨어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3년 동안이나 냉담한 채 살아왔다는 뜻이다.
몇 번 버릴까 말까 망설였지만 버리지 못한 것은 신앙의 끈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족집게 같이 맞추지? 예수님은 정말 능력도 많으셔!.....’
맨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기쁨에 차 되뇌었건만 정작 참아야 할 때가 되어도
그 색종이는 침묵을 지켰다.
달리 말하면 한 번도 참기 위해 노력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그 색종이를 버리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성당 중고등부의 정성 때문이기도 했다.
인내는 상대방과 껄끄러운 관계로 발전하기 전에 제동을 걸어주는 도우미다.
그 도우미를 품고 다녔지만 사소한 일에도 참지 못하고 성깔부리기 몇 번이었던가.
젊은 날 동료들 간에 ‘꼬라지’ 순위를 매기곤 했는데 항상 3등 이내에 들어
꼬라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는 타협이라는 게 통하지 않는 앞뒤가 꽉 막힌 ‘꼬라지’다.
좋게 봐준다면 화끈한 성격일지 몰라도 어쭙잖은 자존심이다.
누군가는 B형이라는 특성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일뿐 나는 그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른 B형 소유자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좋든 싫든 일터에서 동료들과 관계(Relation)를 맺으며 살아간다.
일터는 항상 견제하는 경쟁세력과 도움을 주는 우호세력이 공존하는 곳이다.
경쟁자는 보이지 않게 딴지를 거는데 잘 정제해서 소화를 시키고 참아내야 한다.
더구나 코드가 맞지 않는 상사와의 관계에서는 아무리 부당한 지시라 할지라도
느긋하게 참고 한 박자 늦춰 대응해야 한다.
참지 못하면 결국 하급자가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는 인내라는 말을 곱씹게 되는 사건에 빠져 들었는데
그것은 내 의지와는 전혀 다른 의사결정을 하도록 강요받은 것이다.
난 즉석에서 불가함을 개진하였고 결국은 감정싸움으로 발전하고 말았다.
결국 그와 나의 인간관계는 만신창이가 돼버렸고 증오심으로 이글거렸다.
난 그를 설득하지 못했고 그는 나를 품지 못했으니 인내라는 그 글자가
지갑을 빠져나와 훨훨 날개를 치고 날아갈 때가 언제일까?
07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