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이야기들

'上善若水' 같은 삶이란?...

창강_스테파노 2007. 2. 20. 17:50
 

 

 섣달 그믐날!

삼막사 가는 길은 봄기운이 역력했다.

모두들 설 명절 준비에 여념 없는 시간에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게

남자로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가 만약 오늘 산행약속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난 10시가 넘도록 늦잠을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약속은 곧 목표이고 목적이다.


나의 목표는 무엇이었는가?

난 내 목표를 향해 걸어왔고 그 목표대로 가고 있는가?

인생의 3/4을 살아버린 내게 목표가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내 목표는 없었고 아직도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불현듯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집에 재봉틀 있는 사람 손들어봐!’

선생님은 자전거 있는 사람, 전축 있는 사람을 물었다.

물론 통계자료를 파악하는 원시적인 방법이었겠지만 ...


그러다가 각자 나눠준 종이에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적어내란다.

난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끙끙 앓다가

동무가 적은 법관이라는 글자를 곁눈질로 보고 베꼈다.

법관이 뭔지 모르면서 거름지고 장에 따라가는 격이었다.


난 결국 그 때 이후 아무 목표도 없이 지금껏 살아온 게 아닌가 싶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봉우리라는 목표가 있다.

높은 봉우리던 낮은 봉우리던 그 목표를 달성하고 나서 돌아오는

성취감때문에 산을 좋아하는 것이다.


하산 후 오리전문 요리집으로 모였다.

명절 전날의 느긋함이 하산주로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음식점 입구에 놓인 벼루에 적셔진 붓을 보고 老 회장님께

옥필을 부탁하니 일필휘지로 ‘上善若水’라고 힘 있게 적으신다.

팔순의 노옹이 아직도 떨림 없이 옥필을 쏟으시니 가슴이 환해진다.


‘상선약수’......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니 ......

물은 萬物을 이롭게 하고도 功을 드러내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가장 낮은 곳에 있다.

난 언제나 물과 같은 삶을 살까나?

070217(병술 섣달그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