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 도선국사
[화순 고인돌]
38세의 젊은 나이에 유배지에서 한을 달랬던 조광조를 만나러갔다.
그는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그날 이곳 능주로 유배되어 뒷산에
불게 물든 석양을 보고 있었다.
우리가 찾아가자 그는 뒤편 텃밭으로 돌아나가 결코 우리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권력이라는 것이 사람을 상하게도 하고 온갖 추한 짓을 골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사람은 너무 모나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는 걸
모를 리 없건만 지난 세월을 떠올려보니 인생이 무상하다.
우리는 결국 청년 조광조를 만나지 못한 채 비봉산에 걸린 해를
뒤로하고 세계문화 유산인 고인돌 군으로 향했다.
능주에서 춘양면으로 돌아들어 고인돌 군으로 다가가자
어디선가 돌칼을 들고 원시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올 것만 같다.
세계 문화유산인데도 아무렇게나 내팽개쳐놓은 듯 볼품없어
서울손님에게 미안하다.
제대로 보존을 하지 않고 방치한 이유가 뭐냐고 따지면 보나마나
예산이 없어서라며 손 사레를 칠 것이다.
[영구산 운주사]
천불천탑!
누워있는 석불을 첫 닭이 울기 전까지 일으켜 세우면 미륵세상이
온다는 전설을 간직한 그곳은 언제나 가슴 싸아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하룻밤에 천개의 불탑과 불상을 깎기 위해 안간힘을 쓴 고독한 PM
도선국사는 사실상 실패자다.
물론 첫 닭이 울 때 까지라는 주어진 공기 내에 천불천탑을
완성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도선국사가 일으켜 세우지 못한 이룬 와불이 언제쯤 일어나
다툼 없는 미륵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할 것인가?
미륵 세상을 기원하며 나주호를 거쳐 가을 들녘으로 나서니
석양이 짙다.
어디선가 소 몰고 오는 아이들의 휘파람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고개를 돌려 보았자만 야속하게도 가을만 깊어간다.
색동두부집에 이르러 한 순배 순잔이 돌자 느닷없이
전남대 김병기 교수가 달려와 정을 쏟는다.
오는 손님 따뜻하게 가는 손님 인상 깊게!
어두운 밤길을 더듬어 화순온천으로 가는 길은 내내 가슴을 졸이게
했다.
사실 나도 화순온천을 가보기는 했지만 항상 구경꾼이었던 터라
길눈이 어둡다.
간신히 온천에 도착하니 10시가 넘은 시간인데 노래방으로 유혹한다.
까만 하늘에 초롱초롱한 별들이 노래방 팽개치고 벗하잔다.
등을 대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져 꿈속을 더듬는 귓가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새벽 2시가 넘어 조상규 회원이 서울에서 내려온 것이다.
지극한 성의를 보니 이제껏 이기심에 가득한 자신이 부끄럽다.
[무등산 규봉암]
무등산은 등급을 매길 수없을 만큼 아름다운 산이라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이 또한 이기심의 발로일지는 모르지만 무등산은 겉보기와는 달리
안길수록 포근하다.
무등산 수박 마을을 지나 산장에 도착하여 순탄한 코스와
장거리 코스로 나눴다.
산은 높던 낮던 순탄하던 힘들던 나름대로 묘미가 있다.
우리는 모두 가을에 취하고 억새에 흐느끼며 중머리재를 거쳐
하산했다.
不接賓客 去 後悔!
‘주자십회훈’을 떠올리며 손님대접에 소홀한 점은 없었는지.....
내 고향을 찾은 손님들이 광주와 무등산을 곱게 간직하기를
기원하며 북쪽으로 멀어져가는 고속버스를 보며 손을 흔들자
긴장이 풀리고 홀가분한 피로가 그제야 밀려온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건강만 하소서... 06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