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비봉산에는 대절이 없더라

창강_스테파노 2006. 9. 25. 12:34

 

[비봉산에서 내려다본 능주 전경]

비봉산은 정암 조광조 적려 유허비가 있는 바로 뒷산이다.

해발 256m로 그리 높지 않지만 그곳에는 축조시기를 알 수 없는

산성이 있다.

나는 그 산자락 아래서 태어나서 자랐지만 지금까지 그곳에 오른 적이 없다.

비봉산을 보면 이상하게 북망산천이 떠오르고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그것은 비봉산 자락에 공동묘지가 있어 그런지 모르겠다.


비봉산이란 이름은 전설에 의하면 이렇다.
산세가 수려한 비봉산은 새들의 배설물 때문에 악취가 진동하였을

뿐만 아니라 밤마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새소리 때문에 화가 난

무지렁이가 산불을 지르고 말았단다.

그러자 그곳에 살고 있던 봉황새 부부 중 암컷이 불에 타죽고 말았단다.

짝을 잃은 수컷은 이레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않고 슬피 울다

결국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단다.

이를 불쌍히 여긴 마을 사람들이 그곳에 봉황을 묻어주고 난 후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지만 지금은 전설만큼이나 새들의 지저귐이 들리지 않는다.


비봉산에는 대절이라는 절이 있고 커다란 당산나무가 한그루 서있다.

광주에서 능주로 들어서면 멀리 산등성이에 보이는 바로 그 당산나무다.

며칠 전 초가을 대절을 찾아보기로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

도정공장이 들어선 산자락을 돌아 한낮이 기운 산길로 들어섰다.

[온통 칙넝쿨 세상이 되어버린 밭]

이미 묵혀버린 비탈진 밭에는 칡넝쿨 세상이 되어있었고 칡꽃향기가

영락없는 봄 냄새다.

아! 봄은 1년에 두 번 오는 게 아닐까?

봄을 떠올리며 걸으니 땀방울이 멎고 등허리가 따뜻하다.


산길 한 귀퉁이에는 후손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묘지가 덥수룩한 머리로

낯선 길손을 흘끔 바라본다.

얼마 있으면 추석이 다가 올 텐데 심심하기도 하겠다.

올해도 저 묘지에 후손이 찾아와야 할텐데.....


대절이라는 절은 어떻게 생겼고 스님들은 어떻게 수행하고 있을까?

이미 하안거를 끝낸 스님들이 겨울을 준비하고 있을까?

잡초가 무성한 지붕을 퇴색한 단청이 힘겹게 떠받들고 있지 않을까?

온갖 생각을 떠올리며 걷는 산길을 가로질러 똬리를 틀고 있던

독사가 스르르 무성한 풀 섶으로 사라진다.

사람의 발길이 얼마나 뜸했으면 뱀이 한가로이 졸고 있었을까?

[비봉산에서 바라본 무등산]

제법 너른 능선에 오르자 운동기구가 설치되어있고 당산나무

한그루가 멀리 무등산을 바라보고 있다.

이조 초기에는 능주가 바다였다는데 그렇다면 발아래 능주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곳이 나루터가 아니었을까?

‘대절’

산죽 숲을 지나고 탱자나무숲을 지나 절을 찾아보아도 절은 보이지 않는다.

이름 하여 대나무가 무성하여 대절이라 불렀다는데 대절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퇴뫼식 산성]

한참을 가다보니 자그마한 돌 맹이로 쌓은 그리 길지 않은 돌담이 나타났다.

이름하여 산성이라는데 길이가 900m에 불과한 작은 성곽은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라고도 하고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라고도 한다는데 자세한 내막을 모른단다.

하여튼 유사시에 입성하여 방어나 역습을 위한 테뫼식1) 성으로 한때는

동학군의 거점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단다.


‘이상하다. 거리로 보나 시간상으로 보나 분명히 절이 나와야 하는데....’

오른 쪽 비탈진 산자락에 누워있는 공동묘지의 귀신들에게

홀린 것은 아닐까?

공동묘지를 끼고도는 신작로에는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고 그곳에는

한낮에도 귀신이 나온다는 비석굴이라는 곳이 있어 어린 우리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문득 무섬증이 들어 헛기침을 하며 걸어가건만 절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어딘가에 몸을 감추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엿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봉우리 몇 개를 넘다말고 아무래도 아닌 듯싶어 하산하려 했으나 외길이다.

하는 수없이 되짚어 돌아오며 연신 뒤를 바라보건만 끝내 대절은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혹시 절이 나를 받아들이기 싫어 숨어버린 건 아닐까?

그렇다고 스님들 또한 함께 숨어 나를 엿 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까의 당산나무 밑에 서서 골똘히 생각하다 말고

하산을 서두르니 내 혼백을 빼앗아간 비봉의 귀신은 그제야 나를 풀어준다.

060909

PS :

-어릴 적 들판에서 밭을 갈다보면 조개껍질을 발견하곤 했다. 

그때마다 혹시 바다가 아니었을까 궁금하였는데 이조 초기 그러니까

지금부터 600여 년 전까지는 바다였다고 한다. 그

러다보니 능주 벌의 흙은 가는 모래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 대절은 이미 헐어 없어지고 산죽 울타리만 무성하였다

[헐어 나뒹굴어진 석상]


1) 테뫼식 : 운동선수가 머리에 두른 수건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