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나무 물총
“춘식아! 네가 엎드려!”
내말에 춘식이가 순순히 엎드립니다.
나는 헛청(1) 처마 밑에 꽂힌 낫을 빼내기 위해 춘식이 등을 밟고 올라섰습니다.
춘식이 등은 물컹물컹하고 땀으로 범벅 되어 되게 미끄럽습니다.
몇 번이나 올라서다 미끄러지자 녀석이 꼬라지(2)를 냅니다.
옆에 있던 지만이가 하얀 코를 훌쩍거리며 걱정스러운 듯 우리를 번갈아 바라봅니다.
“야! 지게 갖고 와!”
춘식이는 화가 나는지 벌떡 일어서며 지만이에게 명령을 합니다.
오늘은 집에 아무도 없어 며칠 전부터 계획한 일을 실천에 옮기는 날입니다.
그동안 갖고 싶었던 고무로 만든 물 권총 대신 대나무 물총을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는 뒤란으로 돌아가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대나무를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춘식이가 낫을 들어 내 팔뚝보다 굵은 대나무 밑동을 찍기 시작합니다.
“지만아 비켜!”
나와 지만이가 놀라 한쪽으로 피하자 갑자기 지만이가 비명을 지릅니다.
지만이 고무신이 오래된 대나무 뿌리에 걸려 찢어지고 만 것입니다..
쓰러지다 만 대나무가 거봐란 듯 비웃으며 지만이를 놀려댑니다.
.
막상 잘라 놓고 보니 겁이 덜컥 납니다.
대나무를 베어낸 자리가 텅 비어 금방이라도 아버지께 들통이 날것만 같습니다,
낫 궁둥이로 댓가지를 쳐낸 후 물총을 만들 대롱을 잘라내고 나머지는
대충 토막을 낸 후 댓가지와 함께 울타리 옆에 숨겼습니다.
대나무를 베어낸 밑동에 마른 대나무 잎을 덮어 흔적을 감추니 감쪽같습니다.
우리는 토방(3)에 걸터앉아 못으로 대나무 마디에 구멍을 뚫기 시작 했습니다.
나는 구멍을 크게 뚫었습니다만 춘식이 녀석은 자라 콧구멍만큼 작게 뚫습니다.
“모지라! 나같이 구멍을 크게 뚫어야 물이 많이 나오제!”
녀석이 배짱도 없고 손도 작다며 놀려 댑니다만 대꾸도 않습니다.
굵은 싸리나무 줄기 끝에 걸레를 감아 밀어 넣어 물총을 만들었습니다.
구정물 통에 물총을 담그고 손잡이를 잡아당겨보니 물이 쭈욱 빨려 들어옵니다.
“자! 시작하자!”
우리는 각자 대나무 물총에 물을 빨아들인 후 물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내 물총은 한꺼번에 많은 물이 나오기는 하지만 힘도 없고 멀리 나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춘식이 물총은 기가 막히게 그것도 멀리 물을 뿜어냅니다.
나는 설사병 나서 변소 들락거리듯 물을 넣으러 다니느라 보니 별로 신이 안 납니다.
마음먹고 물을 가득 넣은 후 두리번거리며 춘식이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녀석은 보이지 않는 어디선가 나를 노리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살금살금 기어 장독대 옆으로 돌아가자 느닷없이 장독 뒤에서 물총을 쏩니다.
난 꼼짝없이 춘식이에게 물벼락을 맞고 말았습니다.
“퍼억!”
내가 반격을 시도하자 녀석이 폴짝 뛰어 도망가다 그만 장독뚜껑을 깨고 맙니다.
“나 몰라!”
우리는 꼭 일통을 저지르며 엄마에게 혼날 짓만 골라서 합니다.
우리들의 몰골은 비 맞은 장 닭처럼 온몸이 후줄근히 젖었습니다.
춘식이가 미워 죽겠습니다.
1) 헛청 : 헛간의 다른 말로 허청이라고도 하며 허드렛 물건을 들여 놓는 변소와 딸린 집채
2) 꼬라지 : 성깔의 전라도 방언
3) 토방 : 마루로 올라서기 위한 계단으로 그 위에 신발을 벗어두는 댓돌을 놓음
*** 대나무 물총은 대나무 마디 쪽에 작은 구멍을 뚫은 다음 막대에 걸레나 헝겊을 말아 압축하여 물을 밀어내는 원리로 만든다. 문방구에서 고무로 만든 물 권총 을 팔기도 하지만 그림의 떡이었다. 지금의 프라스틱 물 권총은 물통이 따로 있고 물도 멀리 나가 어린이들의 장난감으로 인기가 있지만 그때는 우리가 손수 만들어 놀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