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이야기들

개미도 IQ가 있을까?

창강_스테파노 2004. 7. 1. 12:37
 

행장을 챙기고 계곡을 따라 팔각정에 다다랐다.

역기를 들고 운동하던 중년의 사내가 힐끔 힐끔 주변을 보며 몸매를 자랑한다.

‘짜식이 벌건 대낮에 알통자랑하고 자빠졌네!’

남성미(?)를 자랑한답시고 오가는 등산객 앞에서 웃통을 벗어젖힌 모습이 눈에 거슬린다.

의자에 걸터앉으니 산바람 한줄기와 고요한 초록이 영혼을 씻어준다.

땅바닥에는 온통  짓밟힌 벚찌 열매들이 널부러져 있다.

‘아 참! 이 자리가 지난번 꽃비를 내리던 그 벚꽃 나무 그늘이구나!‘


고개 들어보니 헤아릴 수 없이 촘촘히 매달린 벚찌가 색의 향연을 벌이고 있었다.

벚찌는 사람이 표현 할 수 없는 온갖 색깔로 색의 마술사처럼 얼굴에 화장하고 있었다.

연녹색 열매가 마지막 깜장색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색깔들은

최고의 화가이자 예술가가 아닌가 싶다.


자신을 변화시키고 후일을 기약하는 벚나무의 지혜를 떠올리며 길을 재촉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땀범벅이 되어 능선에 오르니 산사람들이 발에 걸린다.

내려오는 이와 올라가는 이들의 평온한 모습들에서 성취감을 엿보인다.

낮은 산은 낮은 데로 높은 산은 높은 데로 우리들에게 똑같은 성취감을 선물한다.


‘오늘은 어디에 행장을 부릴까?‘

늙은 참나무 밑 육중한 바위에 배낭을 내리니 이곳이 천국이다.

며칠 전 내린 비로 움푹 파인 바위에 물이 그득히 고여 있다.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고개 돌리니 매연 그득한 서울하늘이 내 작은 행복을 훔쳐간다.


바위에서 분주히 오가던 왕개미들마저 팔꿈치로 기어올라 나의 행복을 시샘한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개미를 잡아 물속에 빠뜨렸다.

혼신의 힘을 다해 헤엄쳐 나오는 그들을 몇 번이고 빠뜨리며 벌을 주었다.

아예 나뭇잎 배를 띄우고 그 위에 개미사공을 만들어 실어 놓았다.


개미들은 나뭇잎 위에서 이리저리 탈출을 시도하며 부산을 떨더니

이내 얼마 안 되어 몇 마리가 물속으로 뛰어들어 필사적으로 헤엄을 쳐 빠져 나온다.

난 그 녀석들을 몇 번이고 배에 실어 귀찮게 했지만 역시 동일한 행동을 계속한다.

나머지 개미들은 계속 맴을 돌뿐 탈출에 용기를 잊은 듯 하다.


10여분이 흐르자 이번에는 또 다른 세 마리의 개미가 물속에 몸을 던져 탈출을

시도한 후 결국은 안전하게 탈출한다. 

비록 미물이지만 그들도 학습에 의해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몇 마리의 개미들은 아예 탈출을 포기한 채

물위에 떠있는 죽은 하루살이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녀석들이 아주 그곳에 안주하려하는가 아니면 낙천적으로 차분히 기다리는 건가?


문득 ‘必死卽生 必生卽死’라는 말이 떠오른다.

용기를 갖고 도전하는 자는 자신은 물론 주위의 미래까지 책임질 수 있고

우왕좌왕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는 결국 그 스스로 멸망한다는 평범한 얘기가

스치고 지나간다.

[04. 6 관악산을 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