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의 놀자귀신들

15. 호랑이 장가가던말!

창강_스테파노 2004. 6. 18. 13:12
 

우리는 파리를 미끼로 삼아 낚시를 하며 놀던 안골로 향했습니다.

실개천이 바위틈을 돌아 돌돌 흘러가다 갑자기 깊은 연못을 만들기도 하는 그곳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우리들의 피서지이기도 합니다.

초록빛 나무 이파리들이 가끔 허연 배를 내놓고 팔락거리기는 하지만

덥기는 오라지게 덥습니다.


우리들은 옷을 벗어 던져놓고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얕은 계곡에 쭈그리고 앉아 가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나무에 올라가지 말고 물가에 가지 말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터라

헤엄치는 것이 젬병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는 아예 물가에 가면 허벅지 이상 깊은 물에는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춘식이는 제법 수영을 잘 해 우리키보다 훨씬 깊은 곳도 첨벙 첨벙 뛰어 내립니다. 그런 춘식이가 부러워 미칠 지경입니다.

녀석이 발부터 떨어지는 다이빙으로 온 사방에 물창이 튀겨 벗어놓은 옷을 적셔 놓습니다.


“옷 다 멍체!”

괜히 심술이 나서 옷 젖는다고 소리를 꽥 질러댑니다만

내가 부러 한번 해본 소리라는 걸 아는 춘식이가 누런 똥니를 드러내며 웃어댑니다.

춘식이와 지만이가 한참을 텀벙대더니 입술이 파래져서 내 옆으로 다가와

돌을 뒤집어 가재를 잡기 시작 합니다.


녀석들은 내가 뒤집었던 돌을 또 뒤집는 바람에 물결이 일어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조심성 없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데뽀로 젖히는 녀석들이 얄밉습니다.

“야! 구정물 일으키지 마!”

버럭 소리를 지르며 조심스레 돌을 뒤집으니 보리새우 몇 마리만 돌 틈으로 몸을 숨깁니다.


아무리 돌을 뒤집어 보아도 가재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난 물속에서 속살을 내놓고 있는 나무뿌리 틈으로 손을 넣으니 따끔하게 손을 찌릅니다.

“아얏~!”

분명히 큰 가재가 굴속에 들어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춘식이가 첨벙첨벙 다가오더니 자기가 대신 잡아 주겠다고 쭈그리고 앉습니다.


“안돼! 내꺼여! 저리가!”

녀석이 우겨대면 대부분 내가 지는 것이 당연한 불문율로 되어있습니다만

지금은 지면 가재를 빼앗기는 건 불을 보듯 뻔합니다. 

급기야 내가 녀석의 뒤통수를 쥐어박자 물속에 코방아를 찧고 맙니다.


녀석이 나보다 힘이 센 걸 모르는바 아닙니다.

난 녀석이 그렇게 힘없이 처박힐 줄은 몰랐습니다.

미안하고 걱정하던 차에 녀석도 질세라 갑자기 내 얼굴을 한대 갈겨댑니다.

갑자기 눈에서 번갯불이 번쩍 튀며 앞이 안 보입니다.


“아앙~!”

아가리를 벌려 힘껏 소리 높여 울어봅니다만 날 말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의 울음소리가 마치 확성기를 튼 것처럼 메아리 되어 돌아옵니다..

지만이는 불안한 듯 커다란 눈을 껌벅거리며 나와 춘식이를 번갈아 쳐다봅니다.

싸움은 내가 울음을 터트린 것으로 싱겁게 끝났습니다.


춘식이는 내가 발견한 가재 굴은 감히 넘보지 못하고

힐끔 힐끔 나를 바라보며 다른 곳에서 가재잡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우리들대로의 법칙이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나뭇가지로 가재 굴 주변을 아주 헐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흙탕물이 되었다고 두 녀석이 앙알거리지만 아까의 주먹다짐 뒤끝이라

말로만 투정을 부리고 맙니다.


흙탕물이 가라앉자 내 손등만큼 큰 가재가 집게발 두개를 터억 내놓은 채

위엄을 부리고 앉아 있습니다.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손이 물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가재를 잡아 고무신 속에 집어넣으니 고무신이 가득 찹니다.

춘식이와 지만이가 부러운 듯 내 고무신을 자꾸 들여다봅니다.


난 부자가 된 듯 마음이 흡족해졌습니다.

근데 맑은 하늘에 흰 구름 한점 떠 있나 싶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립니다. 

우리는 바위에 벗어 놓은 옷들을 둘둘 말아 쥐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만이도 춘식이도 엉덩이가 좌우로 춤을 춥니다.

햇빛이 나는데도 비가 오니 호랑이가 장가가는 모양입니다.


커다란 늙은 은행나무 밑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 비를 피하며 춘식이를 보니

고추가 더욱 작아져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싸웠느냐는 듯이 서로 고추를 보고 놀리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서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소나기가 그치고 앞 뒷산의 풀잎들이

반짝거리기 시작합니다.

멀리 무지개가 떠오르자 우리는 동화 속의 왕자들이 된 듯 기분이 좋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