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산토닝 먹던날
오늘은 아침을 굶고 학교에 갔습니다.
선생님은 주전자에 그득 물을 받아 놓고 번호순으로 불러냅니다.
하얀 종이 속에서 약을 한 알씩 꺼내어 입에 넣어주고는 보는 앞에서 먹게 합니다.
그 약은 ‘산토닝‘이라는 회충약이었습니다.
혹시 회충이란 놈이 약에 취해서 똥꼬로 나올까 슬며시 겁이 납니다.
언젠가 조회시간에 덕자 똥꼬에서 회충이 나온 것을 본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난 약을 잘 못 먹습니다.
약을 먹어 본적이 없어 덩어리를 물과 함께 삼키는 요령을 잘 모릅니다.
그래 그런지 물만 2컵 축내고도 그놈의 약이 목에 걸려 있습니다.
이제는 약이 녹으면서 쓰디쓴 게 더더욱 먹기 사납습니다.
3컵 째에 간신히 목을 넘기니 눈이 커진 듯 합니다.
배가 고파 꼬르륵 소리 나던 것도 물배가 차니 멈춥니다.
아침을 굶어서인지 오전수업이 참 길게도 느껴집니다.
오늘은 얼른 학교를 파해주셨습니다.
책보를 옆구리에 끼고 교문을 나서자 다리가 휘청거리고 하늘이 노랗습니다.
전에는 밥 한 끼 굶어도 이러지 않았는데 참 요상합니다.
회충약이 독해서인지 아니면 회충들이 난리를 친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고장이 나도 단단히 난 듯싶습니다.
겁이 덜컥 나 춘식이를 쳐다보니 춘식이도 매 한가지로 어지럽다고 합니다.
신나게 달려왔던 밭둑길을 느릿느릿 걷자니 부엌에 걸려있는 밥 바구리(1)만 어른거립니다.
근데 왜 아침밥을 못 먹게 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엄마 밥 줘!”
우리 집보다 마을 어귀에 있는 춘식이가 마당으로 뛰어 들어가며
반은 죽어가는 소리로 어리광을 부립니다.
우리 집이 춘식이 집보다 기껏해야 몇 발자국 더 들어가는데 왜 이렇게 먼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춘식이처럼 죽어가는 소리로 엄마를 불렀지만 집은 텅 비었습니다.
꼬라지가 확 났지만 배고픈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까치발로 밥 바구니를 내려 까만 보리밥 속에 쌀밥이 몰려있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내어 고봉으로 밥을 퍼 물을 말았습니다.
된장 항아리 뚜껑을 여니 구더기가 몇 마리가 스멀거리며 기어 올라옵니다.
노란 부분을 골라 종지에 퍼 담아 풋고추를 찍어 밥을 먹으니
콧잔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힙니다.
맞바람에 게 눈 감추듯 허겁지겁 먹고 나서 마루에 누우니
갑자기 주위가 조용하고 말벌 한마리만 석가래 틈에서 날고 있습니다.
배가 부르니 어지럽던 기도 가라앉습니다.
1) 바구리 : 바구니의 전라도 방언
*** 1971년경 우리국민의 84.3%가 한 가지 이상의 기생충에 감염되었다고 한다. 그 후 1976년에는 그 비율이 63.2로 떨어졌다고는 하는데 그 당시 우리는 알약의 회충약과 카라멜 형태의 회충약을 먹곤 하였다. 물론 변 검사 후 기생충 알의 개수에 따라 회충약을 달리 나누어 주었다. 회충약은 공복에 먹어야 하며 약을 먹고 나면 기다란 지렁이 모양의 회충이 항문으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