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면 똥 된다.
화순에서 앵남으로 돌아 능주로 거쳐드는 까만 밤길.
차창 밖 물 잡아 놓은 논 골에서 개구리가 시끄럽게 울어댄다.
아 얼마 만에 들어보는 소리인가?
고향의 소리를 잊은 지 20여년이 넘었다.
“어무니 좋제?‘
“엉 좋다야”
노모와 함께 저녁을 먹고 밤 드라이브 삼아 고향집에 들렀다.
차로 3-40분이면 도착하는 지근거리이건만 손님처럼 들여다 만 볼 뿐
이곳으로 부임한 후 한번도 차분하게 엉덩이를 붙인 적이 없었다.
그건 어머니 혼자 지키는 고향집이 어지러울 만큼 너저분하기
때문이었다.
‘내일은 대 청소를 해야지’
“어무니 얼렁 자. 낼 아침 대청소 할 거여”
어머니와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빛바랜 벽지 위에 점점이
파리똥이 깔려있다.
그동안 휴일 날 점심 한 끼 사드리는 것으로 마치 큰 효도나 한 것처럼
지나쳐 왔던 게 사실은 맘에 걸렸다.
온방 그득히 널려 있는 가재도구는 물론 방바닥이 거칠거칠하여
잠자리가 편치 않다.
이튿날 눈을 떠보니 이제 막 6시가 된 이른 시각인데 옆자리가
텅 비어있다.
오늘은 성당 미사가 없는데 어디 가셨을까?
또다시 꽃잠에 빠져드니 여기가 서울인가 광주인가?
광주로 내려온 지 3개월이 되건만 아직도 눈을 뜰 때마다
서울인 듯 광주인 듯 혼란스럽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벌써 8시가 넘었다.
“어무니 어디 갔다 왔어?”
새벽에 게이트볼을 치고 오셨다니 적이 마음이 놓인다.
늙어 자리에 눕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내게 얼마나 힘든 짊일까?
“어무니 투표 하고 와! 그동안 대청소 하고 있을께”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모르겠다.
천정 구석지마다 거미들이 면사포를 쓰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음식들이 마치 개밥처럼 이곳저곳에 널려있고.
냉장고에는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어 함지박에 20개 남짓한
계란이 놓여 있다.
이것이 내 어머니가 사는 모습이라니 목구멍으로 뜨거운 불덩이가
오르내린다.
나이 들어 몸을 움직이기가 귀찮아 대충 훔치고 살아가는 당신에게
내 기준으로 정갈하길 바라다니 너무나 이기적이다.
“근데 이 달걀은 머여? 이따 내가 가져 갈께”
“흔들어 보고 안 골은 것만 넣었다”
“왜 흔들어봐? 금방 사온 거 아니여?”
“응. 냉장고에서 내놨다”
틀림없이 또 뭘 사다가 넣다 보니 냉장고가 만원이라고
손을 휘저은 모양이다.
더구나 그 녀석들이 냉장고를 차지한지 오래 되기도 했을 것이고....
주말부부인 내가 계란을 달라고 하니 흡족하신 모양이다.
양푼에 담긴 스무 알 남짓한 계란을 싸주신다.
계란을 가져와 한 알 한 알 냉장고에 넣고 보니 정말 부자라도 된 듯싶다.
그것은 어릴 적 귀 하게 여겼던 계란의 추억이 서려있음일까?
계란 후라이를 하려고 흔들어 보니 출렁거린다.
이것도 저것도 한결같이 출렁거리는 걸 보니 전부다 상한 모양이다.
그럼
낮에 계란 후라이를 먹었던 것도 이 계란이란 말인가?
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물침이 한 모금 고인다.
결국 음식 쓰레기가 되어버린 그 많은 계란을 버리러 가야 하는데
속말로 남자가 검은 봉지를 들고 음식물 수거함으로 다가가는 것은
쪽팔리는 일이다.
아파트 창문 밖으로 수많은 아낙들이 나를 지켜볼 것만 같기 때문이다.
‘어머니 제발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사다 묵어 애끼면 똥 돼’
내가 바라는 이 말도 어쩌면 내 기준일까?
06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