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다.
임곡천 너머 야트막한 산자락에 봄이 익어가고 있었다.
광주에서 20여분 차로 달려 시골길로 접어드니 훈훈한 바람이
살랑거린다.
산 너머에서 불어오는 남풍은 혹시 이곳에서 살고 있지 않았을까?
천변에 파릇파릇 돋아난 풀들이 신록의 계절이 멀지 않음을
알려준다.
한적한 산자락 벽돌집 보육원 앞에는 커다란 메타세콰이어 2그루가
오랜 세월을 살아 왔노라며 자태를 뽐내고 갓 새 순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진정한 봉사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차별화된 봉사활동을 머릿속에 그리며 마당에 차를 세웠으나
반기는 이가 없다.
왁자지껄 떠들며 뛰놀아야 할 어린이들이 보이지 않으니
더욱 쓸쓸하다.
두리번거리자 40 중반의 사무국장이 뒤늦게 나와 우리를 반긴다.
사무실에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2년에 설립되었다며
연혁이 적혀있다.
수용인원은 남자 49명 여자 30명 도합 79명이란다.
그런데 뜻밖에 그곳은 고등학생과 대학생도 있었다.
아 그럼 이곳이 부모에게 버림받은 애들의 보금자리란 말인가?
유치원이나 유아원쯤으로 생각한 나는 갑자기 가슴이 저려온다.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도와주러 왔는가?
금일봉 몇 푼 건네고 그 대가로 사진 한 장 찍어 마치
커다란 봉사나 한 것처럼 자랑하려 함인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도록 해야 할 진데
부끄럽기 짝이 없다.
“대학생들은 학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
“원래 고등학교까지만 돌봐주고 자립해야 하는데......
숙식만 지원하는 거예요”
대학생들의 학비를 걱정하자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보육원을 나가야 하는 것이 규정인데 그리 못하는 실정이란다.
“안녕하세요?”
무거운 발길로 숙사로 들어서자 ‘유리왕’ 딱지놀이에 열중이던
초등학생 세 놈이 눈빛도 마주치지 않고 커다란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녀석들의 밝은 모습을 보니 무겁던 가슴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야! 너 숙제 했어? 숙제 하고 놀아야제.”
“째끔 있다 할라고요.”
함께한 직원이 놀리자 맞받아친다.
다행히 내가 생각한 만큼 그들의 가슴이 어둡다는 생각은 기우였다.
이방 저 방 기웃거리며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여니 여자애 둘이서
공책을 펴놓고 마주앉아있다.
“뭐해? 숙제하는 거야?”
불청객인 내가 들어서자 한 녀석이 얼른 책상으로 올라가 앉고
한 녀석은 고개를 숙인 채 눈길도 안주고 오도카니 앉아
등을 보이고 있다.
옆에 앉아 일기를 보며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니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이다.
“왜? 싸웠어? 어디 할부지가 일기 봐도 되지?”
공책에는 선생님의 당부사항이 기러기 날아가 듯 적혀 있었다.
‘황사주의보 발령, 밖에 나가지 말기’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기’
‘파란불 켜지면 손들고 건너기’
그런데 목구멍으로 뜨거운 불이 올라오는 것은 마지막
주의사항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받아쓰기 해오기’
아 이를 어쩌면 좋을까?
녀석이 얼마나 정이 그리웠으면 나를 보고 고개를 떨구었을까?
왜 이들은 이렇게 버림받아야만 할까?
동물도 자기가 낳은 새끼는 끔찍이 아끼고 보살핀다.
그런데 왜 사람은 이리도 쉽게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커가면서 어떤 생각을 하며 자랄까?
“보육원의 역사를 보니 60이 되신 분도 있겠는데 성공한 사람이
후원하지는 않습니까?”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비죠. 성공이란 것이 쉽나요?
설령 성공했어도 자신이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을 감추고 싶어 하는
세태이니 말이죠...“
도배하는 일을 거두는 둥 마는 둥 시늉만 내고 뒤돌아 오는
뒤통수에 대고 숙사 유리창 어느 곳에선가 씩씩한 사내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녕히 가세요.”
난 건물 어디쯤에선가 내다보고 있을 그 녀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차에 올라 육아원을 빠져 나오니 하학 길을 원생들이 삼삼오오
걸어오고 있다.
부모가 없는 보육원을 가정이라고 찾아드는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문득 어릴 적 학교가 파하고 집에 오던 날 어머니가
안 계시던 날이 떠오른다.
텅 빈 집안이 더욱 휑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없으면
심통을 부리곤 했던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집에는 반드시 어머니가 계셔야만 했었다.
내가 나라님이라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양극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가슴으로 봉사 할 줄을 모르는 젬병이다.
내가 불러주고 녀석이 받아쓰기를 했으면 얼마나 좋아 했을까?
어느 지인의 말처럼 내가 대신 부모가 되어 주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사무장에게 금일봉을 놓고 간들 정이 그리운 녀석에게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생각이 짧은 나는 아직도 가슴으로 사랑할 줄 모르는
때 묻은 중늙은이에 불과했다.
맑은 임곡천변을 따라 달리는 가슴속으로 그 녀석이 기어코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이 오버랩 되어 가슴을 아리게 한다.
(06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