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타니!!!!

창강_스테파노 2004. 5. 23. 23:38

1. 우즈백의 아침
사회주의 국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쉬켄트 상공!
성탄절이 지난 뒤 내팽개쳐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힘없는 불빛들이 깔려있다.
서둘러 짐을 꾸리기 시작하는 우즈백인들이 또다시 시끄럽게 부산을 떤다.

술에 취한 그들은 비행 내내 떠들어 대며 나의 여행을 망치고 있었다..
그들에게 몇 번인가 눈총을 줬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눈총을 주었다기보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냥 바라보았다고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들의 모습에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왔다가 가슴 부푼 꿈을 담고
귀향하는 또 다른 모습이 보였다.

입국심사대를 거쳐 짐을 싣기 위해 커트를 찾으나 보이지 않는다.
강남 고속터미널만도 못한 국제공항의 열악한 시설이
우리를 맞은 10월의 마지막 밤은 섭씨 21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밤 12시가 넘어야할 그곳은 4시간의 시차로 갓 8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숙소로 향하는 널찍한 도로에 차선이 그어지지 않은 울퉁불퉁한 아스팔트가
가난은 죄가 아니라며 항변하고 있는 듯 했다.
이른 저녁시간인데도 사람의 왕래가 뜸한 것이 사회주의 국가라 그럴까?

우리나라 강남이라 일컫는 고급 주택가로 들어서니 경비원이 우리를 맞고
집안의 수영장과 당구장이 어색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기내에서 마신 위스키 탓으로 솜처럼 피곤해져 아침을 맞았다.

이국의 풍물을 빠짐없이 담아가려는 욕심을 앞세우고 일찍 산책을 나섰다..
계획된 도시 골목길은 집 앞에 의무적으로 정원을 조성해 놓았다.
늦가을 잎을 떨구기 시작한 나무들과 말라 비틀어져 건포도가 되어버린
포도넝쿨이 인상적이다.

벌써 몽당비를 들고 나와 청소하는 아낙이 보이고 물을 주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어디선가 인형 같은 러시아계 꼬마 숙녀가 자박 자박 걸어 새벽길을 걷고 있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아침의 고요가 생경한 모습으로 나를 맞는다.
넓은 대지에 꾸며진 저택들이 정말 못사는 나라인가 싶을 만큼 나를 혼란에
빠져들게 하였다.

2. 우즈백의 도시
BMW에 올라 안전띠를 매자 기사가 순박하게 웃는다.
남미 안데스 산맥의 목동의 웃음이 어딘가 처량함을 내뿜는다면
치장을 하지 않는 그의 웃음은 친근감을 간직하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나라!
마치 일제시대 때 청소검열 나오는 날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도로변에 몰려나와 낙엽을 쓸고 있었다.
정말 그들이 오랜 사회주의의 틀에서 벗어나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기 위해 꿈틀거리는 걸까?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려 도심을 적시는 타쉬켄트는
도시가 공원이고 공원이 도시였다.
도로변에 흘러가는 그 물을 퍼서 세차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이
물통을 놓고 삼삼오오 서성이며 지나가는 차를 유혹한다.

그들을 못 본 채 산자와 죽은 자가 함께하는 도시안의 공동묘지로 접어들었다.
을씨년스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공동묘지의 음산함을 털어버리듯
어깨를 펴고 블록 담장사이로 문을 비집고 들어가자 묘지기인 듯싶은 노인이 걸어 나온다.

부자와 가난한자는 죽어서도 대접이 달라지는가?
살아생전의 모습을 조각해 놓은 묘석은 빈부격차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죽은 자의 흉상을 조각하는 그들은 훌륭한 조각가들이고 예술가들이었다.

발길을 돌려 나오려니 아까 그 묘지기인 듯싶은 사람이
묘지 입구에 깡통을 놓고 비를 맞고 앉아있었다.
혹시 전생에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오래 전부터 기다렸다는 듯 애처러운 눈은 한 조각의 빵을 얻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100숨을 건네주자 차가 떠날 때까지 수도 없이 성호를 긋는다.
회교국가인 그곳에서 외국인에게는 성호를 그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아냈는지도 모르겠다.

부자와 가난한자 적선하는 자와 구걸하는 자!
상반된 단어들을 뇌까리며 우리의 대학로와 같은 브로드웨이로 향했다.
이 나라의 영웅 ‘아무르 티무르‘ 동상이 서있는 공원 초입에 자리한 젊은이의 거리!

‘등야‘라 불리는 가라오케 가게를 들렀다.
젊은이들이 춤에 빠진 건지 춤이 젊은이들 가슴에 내려온 건지 모를 만큼
지나가는 행인마저 불쑥 들어와서는 한바탕 몸을 흔들고는 사라진다.
전통춤이 끝나고 귀가 찢어질 듯한 빠른 음악이 나오자
금발의 러시아 처녀들이 한바탕 흐느적거리며 몸을 흔들어댄다.

3. 우즈백의 뒷골목
가을비가 내리는 시내는 검은색 계열의 옷을 걸친 젊은이들이 무표정하게 걷고 있었다.
회색도시의 넓은 도로 어디에선가 괘도차가 아가리를 벌리고 으르렁대며 나타날 것만 같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
우산 없이 걷는 사람들!
비 맞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했던 난 순간 가진 자의 오만함에 부끄러워졌다.
유행과는 상관없이 가죽잠바만 걸치는 것이 꿈인 그들의 소박한 꿈!

그 나라의 벼룩시장인 ‘치치코프’로 향했다.
아! 이를 어쩌란 말인가!.
우리가 유행이 지났다고 버린 옷을 그것도 누더기와 진배없는 옷을 파는
다리가 늘씬한 러시아 미인!
우리나라에서 헌옷을 수거해 수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힘은 돈에서 나오는 건가?

볼트. 넛트 등 잡동사니를 파는 고려인!.
외짝의 다 떨어진 신발을 진열해 놓고 주인을 기다리는 아낙!
혹시나 집어 갈까봐 외짝의 신발을 내놓은 그들의 생활에서
난 또 한번 죄를 지은 듯 그동안 풍요롭게 살아온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한숨을 쉬며 빠져 나오자 햇볕에 그을린 얼굴의 사내가 노란 금니를 내놓고 활짝 웃는다.
부의 상징으로 금니를 덧씌워 자신을 과시한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모래시계의 주제곡이 어디선가 흘러나오듯 가슴이 멘다.

한동안 말을 잃고 달려가는 우리 앞으로 구 소련에서 만든 ‘찌글리’라는
앞뒤가 툭 불거져 나온 택시가 덜덜거리며 달려간다.
그 옆으로는 창자 빠진 듯 머플러가 땅에 닿을 듯 늘어진 시내버스가
엔진 덮개를 옆으로 열어 제치고 시커먼 연기를 풍기며 달려간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중앙 분리대를 넘어가는 사람들!
녹색 제복을 입은 경찰이 곳곳에 서있지만 소 닭 보듯 한다.
그들은 오로지 교통 단속만 하는 것이 임무인 듯싶다.
그 많은 경찰은 정권유지를 위한 병력으로 활용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 어렸을 적 순사가 온다면 우는 얘기도 뚝 그치듯 그 나라가 그렇단다.

갑자기 앞서 달리든 ‘찌글리’의 운전석 바퀴 밑에서 불티가 튀기 시작했다.
어느새 바퀴는 몸통을 떠나 반대편 차선으로 굴러 가고 있었다.
이미 폐차장에 가고도 남을 차들이 풍물시장의 중고 부속품으로 겨우겨우
숨을 쉬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지하철로 접어드니 듬성듬성 불을 밝힌 어둑한 지하도에서 잡상인들이
물건 같지도 않은 물건과 까치담배를 팔고 있고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찌른다.
플라스틱 쿠폰을 개찰구에 집어넣자 삼각대가 스르르 힘을 뺀다.

낯선 이방인인 우리가 지하철에 오르자 뭇 시선들이 집중한다.
그들은 2차대전이 막 끝난 후 희망을 잃은 지친 모습처럼 무표정하게 우리를 훑어본다.
온통 검은색 옷이 대부분인 지하철에 수많은 사람들이 말없이 실려 가고 있었다.
마치 공동묘지에서 나와 한바퀴 둘러보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영혼들처럼...


4. 우즈백의 자연

도시가 공원이고 공원이 도시라는 착각에 빠진 나에게
신비롭게 다가온 것은 유난히도 많은 포플러와 프라터너스 나무였다,
그것도 한결같이 하얀 석고를 밑둥치에 분칠해놓고 있으니 이상하다.
그들은 나무를 소중히 여기고 자연을 가꾸는데 소홀함이 없었다.

우리는 천산산맥의 ‘차르박‘ 호수로 향했다.
유난히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우즈백은 석회수로 범벅이 되어 양치질도 정수된 물을 쓴다.
‘차르박’ 호수는 물론이고 타쉬켄트 시내에 이르는 물들이 애머랄드처럼
채색되어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석회수와 혼합된 까닭이란다.
그것은 외국인의 유화에서 본 낯익은 색깔이었고 우유를 적당히 섞어 놓은 듯 했다.

함께 생산하고 함께 나눠먹는 공산주의 사상이 인류의 절반을 매혹 시켰던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콜호즈!
콜호즈의 끝없는 평원 위로 군데군데 모여 있는 시골 정경이
차창 밖으로 빙그르르 돌아 지나간다.

몇 안 되는 농가에 가스를 공급하기 위한 녹슨 가스관이 흉물스럽게 늘어져있다.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그곳에서 말을 탄 남자가 밭길을 걸어가고 있고
양치기 소녀 둘이서 우리에게 손을 흔든다.
그 옛날 우리는 지나가는 기차에 손을 흔들다가도 감자를 먹이며
놀려 주었던 생각이 떠올라 쿡 하고 웃음을 지었다.

건초더미가 쌓인 농가 옆 밀밭위로 수많은 까마귀 떼들이 날아오른다.
녀석들이 낮에는 농촌으로 나왔다가 밤이면 도시로 밀려 들어와
쓰레기를 뒤진다는 얘기를 듣고 동물의 또 다른 삶의 단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교외를 벗어나 한참을 달리자 잡목 몇 그루가 붙어있는 볼품없는 산들이
대머리처럼 이어지고 멀리 천산 산맥이 머리위로 하얀 만년설을 이고 서있었다.
그 만년설이 녹아내려 유난히 강수량이 적은 우즈백을 적시고 있다는 사실에서
역시 자연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5. 우즈백의 엔터테인먼트
고려인이 더듬더듬 우리말을 구사하는 러시아의 마지막 유배지!
회교국가인 그곳에서 유일한 성당에 들어서니 3-40여명의 교민들이 우리를 반겼다.
러시아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고 두 소년이 복사를 서고 있지만 서툴기 그지없다.
친근하게 맞아주는 그들과 함께 다방커피를 맛보며 환담을 나누니 그곳이 서울이었다.

화폐가치가 우리와 같으면서도 물가는 뒤로 자빠질 만큼 싼 나라!
한달 35,000원 급여에 감동하는 환률!
중국의 월 급여가 120,000인데 비해 저임금의 경쟁력이 있지만
아직 사회주의의 잠에서 덜 깬 그들은 욕심을 모른다.

가라오케로 들어서니 다민족의 도우미가 짧은 옷으로 유혹한다.
노래 반주기에 펼쳐지는 한국 산하의 배경화면이 그들에게
동경의 나라로 그려지고 코리안 드림으로 각인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문화의 침략은 곧 그 국민을 쇠뇌시킴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유일하게 한개 밖에 없는 골프장은 전신 맛사지와 숙소를 보유하고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라운딩 Fee가 45,000원이니 골프에 미친 사람들은 한번쯤 뉘가 나게 빠져봄직도 하다.

4일 동안의 짧은 시간!
우즈백인들과 함께 숨쉬며 ‘플럭’이라는 양고기 요리를 맛보았던 그곳을 뒤로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심사장에서 달러 보유를 묻는 그에게 39달러라고 실토하자 입국할 때
신고한 내용을 보여 달란다.
난 그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

씁쓸한 기분으로 탑승을 기다리며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금발의 미니스커트 러시아 처녀가 해죽이 웃으며 다가온다.
눈을 떠보니 보드카를 판매하는 여인의 다리가 멀리서 어른거린다.

다음에 꼭 작정하고 다시 한번 오리라.
탐승안내 방송을 들으며 화장실에 들렀다가 깜짝 놀라 후다닥 뛰쳐나왔다.
그곳은 소변기가 없었던 것이다.
되돌아 나와 다시 보니 남자 화장실이 분명했다.

## 고유명사(지명 또는 차 이름 등)는 틀릴 수 있습니다.

 

[03.10.28 우즈백 여행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