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통고무신 불도장
검정 고무신 밑바닥이 닳아 발바닥이 훤히 들어 난지가 아마 한달은 된 성싶습니다.
헤진 고무신을 챙겨 측간(1) 서까래(2) 틈새에 말아 놓고
향긋한 고무 냄새가 나는 새 신발로 갈아 신었습니다.
새 신발을 신으니 좋기는 하지만 불안합니다.
지난번에도 신발을 잃어버려 혼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제 저녁에 철사 부지깽이를 아궁이 속에 벌겋게 달궈
고무신에 불도장을 2개나 찍어 놓았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그때도 누군가 다 헤진 신발을 남겨놓고 일부러 바꿔치기 한 것입니다.
아마 상급생들이 그런 건지도 모릅니다.
불도장을 찍었더라도 잃어버리기는 매 한가지지만
그래도 안 찍어 놓은 것보다는 훨씬 맘이 놓입니다.
바꿔치기 하는 사람도 불도장이 두려울 테니까요.
봄안개가 낀 개울에 이르니 며칠전 내린 비로 불어난 징검다리가 정강이까지 잠깁니다.
우리는 신발을 벗어들고 조심스럽게 징검다리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맨발의 징검다리는 무척이나 미끄러워 조심해야 합니다.
누런 흙탕물을 바라보니 어지러워집니다.
앞서가던 춘식이가 기우뚱하더니 손에서 신발 한 짝을 놓쳐 버렸습니다.
신발이 둥둥 떠내려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물 속으로 들어가 나오질 않습니다.
춘식이는 어제의 나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내 우산을 집어삼키더니 오늘은 신발도 집어삼킵니다.
말없이 뒤따르는 내 신발에서는 주책없이 뿌걱 뿌걱 물소리가 납니다.
뒤꿈치가 벌겋게 부어오르며 아파 옵니다.
아직 길나지 않은 새 신발은 발뒤꿈치가 벗어져 따갑기 일쑤입니다.
신발을 잃어버린 춘식이 때문에 아프단 말도 못했습니다.
한손에 고무신을 들고 맨발로 걸어가는 춘식이의 툭 튀어나온
빡빡머리 뒤 꼭지가 불쌍해 보입니다.
우리가 '뚝 내문이'라고 놀리는 것도 뒤 꼭지 때문이지만
오늘은 그 뒤통수가 그다지 우스워 보이지 않습니다.
1) 측간 : 변소의 다른 표현
2) 서까래 : 지붕을 얹기 위해 추녀 쪽으로 걸쳐 놓은 나무로
그 위에 대나무나 판자를 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