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강_스테파노 2004. 3. 26. 13:38

1. (프롤로그)

울타리 너머에서 부르는 춘식이의 목소리가 구성지게 들려옵니다.

어둑한 죽석(1)竹席 방바닥에 엎드려 몽당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국어숙제를 하다말고 뽈딱 일어나 문을 여니 눈이 부셔옵니다.


아! 그렇더군요.

봄 햇살이 초가지붕 위에서 늘어지게 하품하고 있었습니다.

생 울타리에 뚫린 개구멍을 빠져나와

우리 키 만큼 자란 보리밭 사이로 춘식이와 함께 달려갑니다.


우리만이 노는 작은 언덕이 있거든요.

자꾸 고무신이 벗어지려 합니다.

발바닥에 땀이 나니 되게 미끄럽습니다.


우리는 양지바른 곳에 새순 돋은 삐비(2)를 뽑아 껌처럼 씹었습니다.

등허리가 따뜻한 게 정말 평화로운 봄입니다.

초가지붕 넘어 멀리서 뱀처럼 기어가는 기차가 아지랑이 속에서 가물거립니다.

‘삐~익!’

춘식이가 어느새 보리피리를 불고 있습니다.


가난한 소년기의 춘식이와 헤어진지가 40년이 넘었습니다.

그 녀석도 내 생각 하기는 할까요?


1) 죽석 : 대나무를 얇게 깎아 얽어서 만든 자리

2) 삐비 : 삘기의 방언으로 띠의 햇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