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한갑, 바지한벌
사당역을 지나 봉천동 까치고개로 향하는 첫 번째 횡단보도는 항상 붐빈다.
도로 양쪽에 골목시장이 있고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퇴근시간에는 더더욱 차량들이 기어가고 횡단보도 위 사람들도 바삐 움직인다.
그들의 바쁜 모습을 보니 신호를 기다리는 나 또한 바빠진다.
신호가 바뀌자 사람들의 모습이 모래 벌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간다.
길을 건너려다 말고 용달차위의 뻥튀기 장수를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문득 유년시절의 간식인 튀밥이 떠오른다.
튀밥장수가 기계를 끌고 나타나면 우리 동네는 잔치가 벌어졌다.
쌀을
아끼느라 보리쌀을 튀겼던 그 튀밥의 맛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하지만 뻥튀기보다 더 내 시선을 끄는 것은 길바닥에 좌판을 벌이기 시작하는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가로등 불빛을 동냥삼아 좌판을 벌이더니 대견스러운(?) 듯 지켜본다.
얼핏 보기에 새마을장터에서 사온 헌옷처럼 구깃구깃하고 힘이 없어 보인다.
라면박스 골판지에 쓰인 2000이라는 숫자가 마치 부엉이 눈처럼 눈알을 굴리며
좌판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오가는 사람들의 바지만 쳐다본다.
과연 저 옷이 오늘저녁에 임자를 만나 한 벌이라도 팔려 나갈까?
2천 원짜리 바지를 사 입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쩌면 기껏 잘해야 노숙자가 사 입을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옷을 내려다보며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직 내가 직접 바지를 사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나 최소한 그 열 배는 넘는
2만원은 갈 것이다.
담배를 꺼내 물고 고개를 들자 신호등 눈금이 거의 닳아져가는 횡단보도 위로
허리가 반쯤 구부러진 할아버지 한분이 힘겹게 건너온다.
손을 늘어뜨리는 것도 귀찮은 듯 뒷짐을 끼고 느릿느릿 걸어오는 할아버지에게
버스가 화가 난 듯 아가리를 벌려 성깔을 부린다.
뒷짐 낀 그의 손에 매달린 축 쳐진 검정 비닐봉지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젊었을 때는 한가락 했을 텐데 늙어 힘없고 쇠잔해지면 모습도 추해지는가?
세상의 고뇌를 짊어진 듯 힘들어 보이는 그 할아버지가 좌판 앞에서
멈칫거리며 유심히 들여다본다.
“요것 싸고 좋아유!.”
좌판 할머니가 재빨리 바지를 들어 허리에 대보며 어울린단다.
한참을 망설이던 할아버지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다 뺐다를 반복한다.
결국 살 맘을 굳힌 듯 손을 빼자 동전과 지전이 끌려나온다
“할아부지, 이천원, 이천원.”
할머니가 귀에 대고 큰소리로 외쳐대자 손을 펴 돈을 헤아린다.
200원이 부족한 2천원인 듯싶다.
결국 흥정이 끝난 듯 인심 좋은 할머니 손에서 검정 비닐봉지가
할아버지 손으로 건네진다.
이제 할아버지 손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3개가 되었다.
나머지 두 개의 봉지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어쩌면 건너편 골목시장에서 저녁거리를 사 오는지도 모르겠다.
힘겹게 걸어가는 할아버지 뒤를 따라 담배에 불을 붙이는 나는 호강에 초쳤다.
이제는 끊겠다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다짐하던 담배를 미워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인연 같은 존재로 다가서는가 싶어 기분이 나빠진다.
내가 하루만에 2500원을 연기로 날려 보내는데 그 할아버지는
2000원짜리 바지를 1년 아니 2년도 더 입을지 모른다.
이 사회가 이렇게 양극화 되어가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고 이를 해결할 사람은
누구인가?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격차는 어쩌면 우리사회에서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일지도 모른다.
저 할아버지도 젊음을 바쳐 이 나라의 발전에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독거노인일까 아니면 미래를 먼저 사는 퉁크족1)일까?
자식들이 있다면 그들은 이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혹시
환한 거실에서 가족들과 웃으며 저녁을 먹고 있지는 않을까?
바람이 쌀랑해진 골목길로 힘겹게 돌아들어가는 할아버지의 등 뒤로
휑하니 가을바람이 지나간다.
1) 퉁크족 : Two only No Kids 자녀의 도움을 거부하며 홀로살기를 주장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