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호에서 일어난 일
무슨 일이 있었을까?
왜 그렇게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내었을까?
이른 새벽 고속버스에 오른 나는 아파트를 나설 때 들려왔던
이상한 소리 때문에 심란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털어버리려고 하기에는 너무나 괴이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일어난 시각은 6시였다.
출장을 떠나는 날이라 평소보다 1시간을 빨리 일어났다.
고양이 세수하듯 얼굴을 씻고 부리나케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 순간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인지 신음소리인지 분간 할 수없는 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소리를 찾아 고개를 돌려보니 104호에서 어슴푸레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충망 안의 유리문이 열린 것으로 보아 휴가를 떠난 것은 아닌 듯싶다.
아무리 더워도 그렇지 베란다 창문을 열어 놓은 채 사랑놀이를 하다니......
치신머리없이 남의 사랑놀이나 엿듣는가 싶어 얼굴이 달아올랐다.
발길을 돌리다말고 아무래도 신음소리가 심상치 않아 머뭇거리며 또다시 엿들었다.
가끔 애 울음소리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부부싸움 뒤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부싸움을 하면 대부분 여자가 우는데 왜 남자도 흐느껴 울까?
경비실에 들러 순찰을 요청하고 잰 걸음으로 집을 나섰던 것이다.
이른 새벽 고속버스에는 손님이 고작 세 명밖에 없었다.
앞 의자에 다리를 걸치고 누워 나만의 여유를 찾으려 하지만
아까의 흐느끼는 소리가 귓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혹시 삶을 포기한 부부가 일가족 자살을 기도한 것은 아닐까?
잦아드는 듯한 신음소리는 극약을 먹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임에 틀림없으리라.
왜냐하면 어릴 적에 쥐약 먹은 개가 몸부림치는 것을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섬뜩한 생각이 들어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아파트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경비실에서 보고 받은 것 없었습니까?”
“아니요, 무슨 일인데요?”
경비아저씨가 내 말을 흘려듣고 순찰을 돌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어쩌면 내일 조간신문에는 ‘일가족 집단자살‘이라는 내용이 실릴지도 모른다.
점심때가 되도록 아무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관리사무소에서조차
내 말을 묵살 한 모양이다.
아파트 문화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가고 있다.
저마다 콘크리트 토끼장에 갇혀 지내기를 선호하며 이웃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말건 내 토끼장만 침해받지 않으면 그만 이라는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이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파트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많은 기여를 해 왔지만
내 스스로 쳐 놓은 울타리를 넘어오도록 용납하지 않는 삭막한 문화를 양산했다.
이웃이 누군지조차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알 필요도 없으며
기껏 아는 사람이라고 해야 바로 위층 사람 정도다.
그 이유는 위층에서 쿵쾅거리는 소리에 한번쯤 안면방해를 당해본 적이
있어야만 도대체 누군가 싶어 눈살을 찌푸리고 지켜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104호를 유심히 훔쳐보았다.
하지만 응접실에서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TV가 켜져 있다.
‘아니야. 어젯밤 켜 놓은 그대로일거야.’
경비실로 달려가니 경비아저씨가 멀뚱히 바라보며 마지못해 서류철을 들고 나선다.
그를 뒤따라 초인종을 누르는 등 뒤에서 숨을 죽이고 거동을 살폈다.
한참이 지나도록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내가 걱정하던 것이 현실로
다가오고 만 것이다.
‘그럼 그렇지! 내 예감이 적중한 것이다.‘
119를 불러야 할 것이고 어쩌면 목격자(?) 신분으로 한 두 번은
경찰서에 불려갈지도 모른다.
왜 이런 일이 우리 아파트에서 일어난 것일까?
아무리 살기가 어렵다고 한들 죽을 용기가 있으면 무엇인들 못할까?
몇 번 초인종을 누르자 한참 후 예쁜 아낙이 반쯤 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다.
그렇다면 아침의 그 소리는 무슨 소리였을까?
이른 새벽 궁합을 맞추는 소리가 그리도 요란 했을까?
갸름한 얼굴 어디에서도 요부 같은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머쓱해 하며 뒤돌아 나오는 나에게 경비아저씨가 한마디 한다.
“며칠 전부터 발정 난 고양이들이 지랄허고 댕깁디다.”
050814 창강. 광주 출장 떠나던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