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이야기들

그래! 박새야! 네가 스승이다.

창강_스테파노 2005. 7. 4. 18:08
 

장맛비가 오락가락 하는 토요일 관악산으로 접어들었다.

일행과 만나기로 한 마당바위까지 시간을 맞춰대기가 아무래도 빠듯하다.

가쁜 숨 몰아쉬며 발걸음을 재촉하니 빗물처럼 땀이 흐른다.


나는 항상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고 여유가 있어 나홀로 산행을 즐기는 편이다.

거창하게 청남대구상 같은 것을 하는 건 아니고 대부분 일상의 작은 일들이다.


짧게는 이 시간 이후에는 무엇을 할 것 인가에서부터 낼은 무얼 할 것 인가 정도다.

자잘 구래한 자식걱정, 많으면 좋겠지만 내게 필요한 최소한의 돈,

나와 연을 맺은 많은 사람들 생각,,,.


하지만 하루의 절반이상을 일터에서 보내는지라 아무래도 일터생각이 많다.

누구든지 일터에서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가슴에 끼고 산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사람들 간의 불편한 관계들....


요 며칠 전부터 가슴에 일고 있는 증오와 분노의 불꽃을 털어내려

고행이라 생각하며 산행을 해 보지만 쉽지가 않다.

그 불덩이를 가슴에서 빼내지 못하는 연유는 어디에 있을까?


‘타협 않는 유능한 사람과 타협할 줄 아는 무능한 사람 중 누가 나을까?’

어느 지인의 말대로 능력은 떨어지더라도 아부할 줄 알고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삶이 현명한 삶이라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려본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인생을 잘 못 살아온 바보다.


문득 요즘 인기 있는 이순신이라는 드라마가 떠오른다.

신하에게 칭찬과 채찍을 적절히 구사하는 군주!

충신과 간신을 분별할 줄 아는 눈을 가진 그런 사람이 그립다.

그럼 나는 칭찬과 채찍을 적절히 구사하고 충.간신을 구별하는 혜안을 갖고 있는가?

목을 축이며 불덩이를 끄집어내고자 용서와 화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왕명을 거역하고 타협하지 않는 반골기질이 내 피 속에 흐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천지정으로 들어서자 중늙은이 둘이서 장기를 뒤고 있다.

탁탁 두들기는 장기짝 소리가 거슬리지만 애써 소 닭 보 듯 했다.

어제 쏟아 부은 장대비로 골골이 폭포다.

땀을 식히며 고개를 들어 산자락을 보니 그리 큰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차라리 장대비가 쏟아져 가슴의 불을 꺼주면 좋으련만.......


배낭을 짊어지고 일어서려는 순간 어디선가 박새 한 마리가 날아와

머리 위 나뭇가지에서 쫑쫑 거린다.

진회색 몸뚱이에 머리는 검고 볼이 하얀 연약한 박새가

주둥이에 날벌레 한 마리를 물고 불안한 듯 이가지 저가지로

자리를 옮기며 내 눈치를 살핀다.

꼬리날개를 옆으로 틀어 흔드는가하면 이따금 ‘찌르 찌르륵!’ 하고 울어댄다.

장기 짝 두들기는 소리에 깜짝 놀라 포르릉 나는가 하면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살핀다.

‘녀석하고는? 나도 복잡한데 네깐 것에 관심이나 있는 줄 알고? 흥!’

문득 이솝우화가 떠오른다.

까마귀가 입에 물고 있던 치즈를 빼앗아먹기 위해 여우가 노래를 시키자

까마귀가 먹이를 땅에 떨어뜨렸다는...


하지만 박새는 우화와 달리 입에 문 먹이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혹시 이 근방에 둥지를 튼 건 아닐까? 박새는 어디에 둥지를 틀까?‘

나뭇가지를 살펴보았으나 박새가 둥지를 틀기에는 너무 크고 높다.

그렇다면 억새풀이나 키 큰 풀밭 어딘가에 둥지를 틀 터인데 왜 여기서 재잘댈까?


녀석은 나뭇가지에서 맴돌 뿐 도대체 멀리 날아갈 생각을 않는다.

그는 어쩌면 낯선 불청객을 견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시나 싶어 정자지붕을 바라보니 양철지붕 추녀 틈새가 벌어져 있다.

혹시 녀석이 이곳에 둥지를 튼 건 아닐까?


아무래도 내가 자리를 비켜줘야 될 듯싶다.

그 곳을 떠나가는 척 하고 몇 발짝 떨어져 바라보니

찌륵 찌륵 울던 녀석이 푸르ㅡ릉 날아 순간 자취를 감춘다.

얼른 다시 돌아와 추녀를 쳐다보니 먹이를 건네준 녀석이

재빨리 추녀 속에서 빠져나와 어디론가 사라진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만히 귀 기울이니 가느다란 지저귐이 추녀 속에서 흘러나온다.

제 어미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애쓰는데 눈치 없이 ‘나 여깄소!’ 하고

재잘대는 모습이 세상물정 모르는 순박한 어린애다.


종족 보존을 위해 애쓰는 박새의 지극한 정성!

열심히 살아가는 박새를 보니 삶의 소중함이 느껴진다.

세상은 정말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떠나주면 될 텐데 훼방꾼이 나타났으니 얼마나 불안했을까?


그래! 박새를 위해 산으로 떠나듯 증오심과 분노하는 마음에서 떠나자.

녀석의 행동거지를 살피며 해찰을 하고나니 내 갈 길만 아득하다.

능선에 올라 어림짐작 서울대 캠퍼스를 내려다보니 모습은 간데없고

구름바다 위에 선 나는 신선이 되어있다.

그래 박새야 새끼 잘 키우고 잘 살아라....


05.7/2 수필가/창강  이 주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