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에 만난 사랑
초여름 날 들판에 서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열병을 앓듯 사랑을 쏟은 뒤 맞는 이별 같은 것이다.
유년시절 어느 여름날 뜬금없이 그를 만났다.
그날도 샛밥을 이고 나선 어머니를 뒤따라 물주전자를 들고 밭으로 갔다.
광 구석지에 세워진 낡은 우산을 파라솔 삼아 밭두렁에 세워놓고 앉으니
뜨거운 열기로 땅심이 빠져 밭작물들은 혀를 빼고 축 늘어져 있었다.
한 마지기 남짓 되는 작은 밭에 심어놓은 고구마와 참깨 이파리는
기진맥진해 늘어져 있었고 서숙1)은 밸밸 꼬여가고 있었다.
하지만 밭두렁에 덤으로 심은 완두콩 사이에는 오이넝쿨이 쉼 없이
노란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여린 오이 한 개를 툭 따 입에 물고 아삭아삭 씹자 갈증이 가신다.
이따금 끼룩끼룩 울어대는 개구리가 더위를 못 참고 첨벙 논으로 뛰어드는
그해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내 고추만큼이나 작은 오이가 힘없이 가시를 품고 나를 경계하고 있는 틈새로
오이넝쿨을 닮은 또 다른 넝쿨이 뻗어 오르고 있었다.
이파리가 도리 납작한 녀석이 마치 오이처럼 노란 꽃을 피우내고 있는 것이다.
녀석은 어디서 온 누구일까? 오이 사촌일까?
며칠 후 다시 찾은 밭두렁에서 그 넝쿨은 마치 임신 6개월 아낙처럼
푸르딩딩한 열매를 맺고 당당한 얼굴로 나타났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그리도 먹고 싶어 했던 참외였다.
그해여름 나는 참외끝물이 되도록 아직까지 참외를 먹어보지 못했다.
아니 여름 내내 수박도 맛보지 못하고 풀벌레가 울어버릴지도 모를 판이었다.
천사가 나에게 선물을 보내준 것일까?
이 근동에서 참외농사를 짓는 사람이 없는데 왠일일까?
어쩌면 지난해 두엄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뒤늦게 싹을 틔운 걸까?
아니면 참외를 먹으며 지나가던 누군가의 입에서 뛰쳐나와 뿌리를 내린 걸까?
생명의 신비로움에 가슴 조리며 조심스럽게 그를 지켜봤다.
그 후 나는 틈만 나면 밭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뙤약볕이 쏟아지는 밭이 삶의 기쁨으로 다가온 것이다.
어느 틈엔가 또 한 개의 참외를 잉태하여 도란거리며 몸집을 불리기 시작한다.
지난 장날 과일 전에서 나를 유혹하던 샛노란 참외보다 더욱 알차게 키우리라.
지나는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풀을 베어 어린 참외를 덮어놓고
조마조마하며 여름을 맞고 있었다.
난 그들을 아무도 모르게 감춰놓고 나 혼자만이 차지할 것이다.
난 어느덧 내 희망이 되어버린 그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행복하다.
고달픈 삶의 여정에 영양분을 채워주는 것은 곧 관심이고 사랑이다.
비록 대가가 없을지라도 돌아오는 희열은 내 몫이기 때문이다.
철지난 참외가 나에게 이토록 샘솟는 용기와 희망을 주다니......
하지만 며칠 후 난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마른 풀 속에서 노란얼굴을 내밀며 맞아주어야 할 참외는 온데간데없고
이제 갓 핀 꽃봉오리만 힘없이 떨고 있었던 것이다.
허탈감에 가슴이 텅 비어버린 그 여름에 처음으로 절망이란 것을 알았다.
무릇 모든 것이 너무 빼어나거나 자색이 뛰어나면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고
종국에는 아픈 이별을 맞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1) 서숙 : ‘조’의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