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뚜레
“삼식아! 얼렁 가보자. 오늘 코 뚫는데!”
사립문을 밀고 들어오는 춘식이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샛골 개울가로 냅다 달려갔습니다.
토실토실 살진 보리 알갱이가 성난 얼굴로 까시락(1)에 힘을 주고 꼿꼿이 서있는
보리밭에서 익어가는 보리냄새가 훈풍을 타고 밀려옵니다.
“느그덜은 저리 가그라!”
담배를 피우고 앉아있던 복례 아버지가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하십니다.
복례 아버지 옆에는 둥그렇게 말아 만든 노간주나무 코뚜레가 놓여있습니다.
노간주나무는 질겨 어지간해서는 부러지지 않아 코뚜레로는 제격입니다.
영문을 모르는 송아지가 목사리(2) 끈에 메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습니다.
거북등처럼 똥이 묻은 어미 소와는 달리 녀석의 엉덩이가 반지르르 윤이 납니다.
어리광을 부리며 어미 소 옆에 붙어 다니던 모습은 간데없고 어느덧 뾰족한 뿔에
힘이 붙어 누가 보아도 일꾼 황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쟁기질을 하려면 다리 힘이 짱짱하고 어깨가 벌어져야 되는데 우리가 보기에도
어미 소 못지않게 튼튼해 보입니다.
어미 소가 팔려가던 지난 장날 우리에 갇혀있던 측은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떠나가는 어미 소를 바라보던 송아지의 커다란 눈망울!
이제는 엄마 몫을 대신하며 혼자 살아야 하는 녀석이 불쌍하기 그지없습니다.
멀리서 윗동네 석이 아버지가 뾰족한 나무 꼬챙이를 들고 오십니다.
복례 아버지가 송아지 목에 걸린 목사리를 잡아끌자 영문을 모르는 송아지가 따라갑니다.
나무 꼬챙이를 들고 콧구멍을 노리는 석이 아버지의 얼굴이 갑자기 무서워집니다.
송아지 목을 쓰다듬으며 코를 간질이던 석이 아버지가 갑자기 나무 꼬챙이로
코를 힘 있게 뚫어버립니다..
“우움! 우우움!”
“우메! 피난다!”
생전 처음 듣는 송아지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찌릿합니다.
꼬챙이 끝에 달린 노끈을 타고 주르르 피가 흘러내립니다.
비명을 지르며 힘을 쓰는 송아지를 복례 아버지가 뿔을 잡고 낑낑댑니다.
하지만 기다란 노끈 끝을 잡고 노려보는 석이 아버지 앞에서는 꼼짝을 못합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코가 아프기 때문입니다.
한참동안 실랑이 끝에 송아지도 힘이 부치는지 가느다란 비명만 질러댈 뿐 조용해집니다.
풀밭에 흘린 피가 개울가로 흘러들어 빨갛게 물들어 갑니다.
“워! 워어워!”
석이 아버지가 코뚜레를 코 속에 밀어 넣자 또 한번 요동을 칩니다.
벌겋게 눈에 핏발이 선 송아지가 금방이라도 우리를 받으러 달려 올 듯만 싶습니다.
하지만 송아지는 체념한 듯 고개를 하늘로 젖히고 입에서 하얀 거품을 밀어 냅니다.
코뚜레에 새끼줄을 매어 놓았으니 이제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송아지의 자유를 빼앗아간 복례 아버지가 왠지 미워 죽겠습니다.
송아지는 이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논으로 밭으로 끌려 다닐 것입니다.
“춘식아! 가서 쑥 좀 뜯어 와라!”
상처 난 코에 파란 쑥물을 발라주니 또 한번 비명을 지릅니다.
“우~움! 우움!”
누릿한 보리 냄새 속으로 송아지의 애절한 신음소리가 잦아듭니다.
아픔을 참아내는 송아지의 울음소리 너머로 뻐꾸기가 울고 있는 늦은 봄날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1) 까시락 : 까끄라기의 전라도 방언
2) 목사리 : 코뚜레를 하기 전에 송아지의 목에 맨 끈
3) 짠하다 : 불쌍한 기분의 다른 표현
** 송아지는 생후 4∼5개월 이후에 짚으로 만든 <목사리>라는 고삐를 맨다.
그 후 1년이 지나면 쇠코를 뚫어 코뚜레를 꿴다. 코뚜레의 상처는 2주 정도 지나면
완전히 아물게 되므로, 적어도 한달 만에 굴레를 짜게 되며 이때 앞걸이와 목사리를
제거한다. 코뚜레를 걸어서 이마 위로 넘기는 것을 <우넘기(우뎅기)>라 하고
여기에 고삐가 연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