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실이 누나
비가 올 듯 말 듯 꾸물거립니다.
고샅길을 벗어나 동네 어귀로 나오니 북실이 누나가 중얼거리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애기도 안보고 돌아다니며 또 혼잣말을 해댑니다.
북실이 누나는 아는 것이 많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면 구구단도 척척 외고 어떤 때는 이순신 장군 이야기도 합니다.
웃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북실이 누나는 얼굴이 참 예쁩니다.
근데 가끔 바보같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북실이네 오빠도 어머니도 별 관심 없이 내버려 둡니다.
어쩔 때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정없이 욕을 해댑니다.
언젠가 나에게 욕을 해 깜짝 놀라 바라보니 아무도 없는 내 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얼른 비켜가자 히죽거리며 웃습니다.
그러더니 몸빼(1)를 내리고 오줌을 싸기 시작합니다.
지난달에는 온 동네가 장속이 되었습니다.
“네 이년! 너 죽고 나죽자! 오메 동네 챙피해서 못살것네! 누구여! 누구여 이년아!”
북실이 어머니가 북실이 누나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며 두들겨 패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네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차며 말립니다만 막무가내입니다.
북실이 누나는 마당에서 질질 끌려 다니며 울기만 합니다.
“틀림없이 삼남이 그놈일 것이여! 오메 그 미친놈! 호랭이는 그런 놈 안 물어가고 뭣 하는 것이여?”
나와 춘식이가 울타리 사이로 들여다보니 말씀을 나누던 어른들이 얼른 들어가라고 합니다.
항상 동네 사람에게 꽥꽥거리며 덤벼들던 때까우(2)도 놀랐는지 허청 구석지에 머리를
맞대고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며칠 전에 아기를 낳았습니다.
사립문에 걸린 새끼줄에는 숯덩이와 빨간 고추가 매달렸습니다.
“잘 키워! 아들이면 어디여!”
미역을 사들고 시장에서 돌아오는 북실이 누나 어머니에게 복례 어머니가
말을 건넵니다만 힘없이 고개만 끄덕입니다.
아들 낳아 좋다고 덩실 덩실 춤이라도 추어야 할 텐데 참 이상합니다.
근데 동네 사람들이 삼남이 삼춘을 왜 그렇게 미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들에게 가끔 유과도 한 알씩 주는 그 삼춘을 미워하는 것은 아마 일을 안 하고
놀기만 하기 때문에 그런 모양입니다.
항상 머리에 번들번들 기름을 바르고 읍내 이발소에서 놀다가 해가 넘어가면
술을 마시고 돌아오곤 합니다.
그 삼춘이 나타나면 동네 사람들은 하던 얘기도 멈추고 다른 얘기를 합니다.
사실 그 삼춘이 나쁜 점이 있기는 있습니다.
아랫동네에 혼자 사는 점식이 엄마를 귀찮게 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물 길러 온 점식이 엄마 팔을 잡아끌며 말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왜 이래? 자꾸?”
그렇게 귀찮게 하다가도 동네 사람들이 오면 슬금슬금 되돌아가곤 합니다.
삼남이 삼춘은 항상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뗑깡(3)을 놓기도 합니다.
군인 아저씨가 된 후 돌아왔는데 이상하게 무서운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전에는 일도 잘 하였는데 군대에 가면 다 그런 모양입니다.
1) 몸뻬 : 여자들이 일할 때 입는 바지로 통이 넓고 발목을 묶게 되어 있음
2) 때까우 : 거위의 전라도 사투리로 집을 지키므로 개 대신 키우기도 함
3) 땡깡 : 일부러 트집을 잡아 귀찮게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