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산너머로 날아간 연
똥 구녁(1)을 간질이던 햇빛이 이마위로 올라와 헛청(2)으로 찾아들자 백구가 집에서 나와
기지개를 켜며 강아지들을 피해 자리를 잡습니다.
하지만 복슬복슬 살이 오른 강아지들은 허천병(3)이 났는지 뒤뚱뒤뚱 기어 나와
또 젖을 빨려고 달려들자 귀찮은지 슬그머니 일어서 자리를 비킵니다.
녀석들은 어미를 따라가다 말고 서로 앙알대며 힘겨루기를 합니다.
새끼들에게 젖을 하도 많이 빨려 허리뼈가 다 드러날 만큼 비쩍 마른 백구가 불쌍합니다.
춘식이와 난 토방에 앉아 연살을 깎기 시작했습니다.
기둥 살과 두깃살은 대충 깎아도 되지만 이맛살과 가운데 살은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춘식아! 코 떨어져! 글고 삼식아 흐훕 해!”
우리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앉아있던 지만이가 걱정 되는지 한마디 합니다.
난 무슨 일에 골똘하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입에서 침이 흘러나오고 맙니다.
춘식이를 쳐다보니 녀석의 코끝에는 이슬처럼 맑은 콧물이 금방이라도 뚝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이따금씩 우리키 만한 고드름이 차르락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집시랑(4)에는 흘러내린
낙수가 골을 이루며 흘러갑니다.
대나무를 잘게 쪼개 무릎위에 놓고 낫을 뉘여 조심스럽게 속살을 깎아냈습니다.
그러다보니 바지가 성한 곳이 없고 헝겊 조각을 대어 기운 바지가 마치 미술시간에
색종이를 오려 붙여 만든 모자이크 같기도 하고 허수아비 옷 같기도 합니다.
연살 다섯 개를 만들고 ‘새농민(5)’ 속지를 접어 가위로 싹둑 오려내니 8각형 구멍이
뚫립니다.
창호지로 연을 만들면 좋을 텐데 그나마도 다행입니다.
“지만아!! 언능 가서 밥테기 갖고 와!”
지만이가 낑낑대며 가마솥 뚜껑을 엽니다.
가마솥 속에는 더운물이 고여 있고 양푼 속에 보리밥이 들어앉아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연살을 붙이며 지만이를 보니 지만이는 홍에(6)연을 만들고 있습니다.
홍에연은 연살 두개만 교차시켜 꼬리를 길게 달면 되지만 방패연은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목줄은 비료포대에서 뽑아 낸 튼튼한 실로 매었습니다.
우리에겐 연 자세(얼레)가 없지만 그렇다고 연 실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동안 모아 두었던 거름 실과 엄마 몰래 훔쳐낸 바느질실은 물론 게실(털실의 일본 말)을
묶어서 연 실로 사용합니다.
실꾸리(7)에 감긴 실을 일부러 토막 내어 허드레 실인 것처럼 어머니 눈을 속인 후
다시 이어 사용하기도 합니다.
지만이가 홍에연을 들고 토방에서 마당으로 뛰어 내립니다.
녀석이 쭉 미끄러지더니 엉덩방아를 찧으며 옆으로 넘어지고 맙니다.
이미 마당은 눈이 녹아 진흙투성이입니다.
홍에연이 지만이를 보고 꼬리를 팔랑거리며 웃고 있습니다.
울상이 된 녀석과 우리는 연을 들고 동네 앞 보리밭으로 나왔습니다.
보리밭도 흙이 반죽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아직 녹지 않은 눈을 골라 밟으면
고무신에 흙이 달라붙지 않습니다.
지만이의 연이 꼬리를 팔랑거리며 단번에 떠오릅니다.
방패연이 양반처럼 점잖다고 한다면 홍에연은 초라니 방정을 떨며 올라갑니다.
내가 만든 연은 떠오를 듯 하다가도 지바꾸(8)를 하며 옆으로 꼬꾸라집니다.
지바꾸를 하는 반대쪽에 지푸라기 한줄기를 묶었습니다.
이번에는 지푸라기 쪽이 무거운지 그 쪽으로 꼬꾸라집니다.
간신히 균형을 맞추고 띄워 올리니 그제야 무거운 몸을 털고 오르기 시작합니다.
가끔 기우뚱 갸우뚱 하기도 하고 홍에연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높이 오릅니다.
연실을 늦추자 고개를 앞으로 꺾더니 사지에 힘을 축 빼고는 너울너울 가라앉습니다.
그러다가도 실에 힘을 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힘차게 올라갑니다.
어느덧 우리들 신발은 장화를 신은 듯 진흙이 발등까지 밀려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연줄을 끌고 돌담 옆으로 나와 하늘을 보니 당산나무보다 더 높이 떠있습니다.
우리가 당산나무 까지 가려면 작은 내를 건너야 하는데 연은 손쉽게 건넙니다.
연줄만 길면 멀리 보이는 학교 지붕까지도 단박에 달려갈 것입니다.
실꾸리를 돌담 틈새에 끼워 놓고 작은 종이를 둥글게 잘라 구멍을 낸 후
깔때기처럼 침으로 붙여 연 줄에 끼워 보내니 빙글 빙글 돌며 연을 향해 달려갑니다.
우리는 고무신을 덮치고 발등까지 올라온 진흙을 긁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지만이가 흙 범벅이 된 엉덩이를 비벼 털어 내니 먼지가 확 피어오릅니다.
“어엇!”
한눈파는 사이에 내 연이 멀리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녀석을 붙들어 맨 실꾸리가 돌담 틈새를 벗어나 보리밭 위로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실꾸리를 잡으러 보리밭으로 달려갑니다만 실꾸리가 붕 뜨더니 안산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합니다.
울상이 된 내가 돌담길로 돌아오자 춘식이가 눈치를 보며 실꾸리를 감고 있습니다.
앞 산등성이에 안개처럼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봄이 멀지 않았나 봅니다.
1)구녁 : 구멍의 사투리. ‘똥구녁을 쑤셔도 안 일어나다(늦잠자다)‘
2)헛청 : 헛간으로 된 집채, 허청이라고도 하며 농기구나 지푸라기, 왕겨 등을
들여 놓을 수 있는 별채
3)허천병 : 배가고파 허겁지겁 닥치는 대로 먹어대는 병으로 전라도 사투리
4)집시랑 : 초가의 처마 끝을 말하며 기스락이라고도 함
5)새농민 : 농업이 주류를 이루었던 6-70년대에 발간한 잡지
6)홍에 : 홍어의 전라도 사투리
7)실꾸리 : 둥글게 감아 놓은 실몽당이. 실테라고도 함
8)지바꾸 : 일본말, 자폭 또는 자승자박을 뜻하며 연날리기에서 땅에 처박히는 것
** 방패연은 목줄을 잘 매면 굳이 꼬리를 달지 않아도 균형을 잡고 하늘에 오른다. 연을 띄울 때 종이를 작고 둥글게 찢어 가운데 조그맣게 구멍을 내고 연줄에 꿰면 빙글빙글 돌며 연을 향해 올라가기도 하고 연 싸움을 할 때는 연한 풀에 사금파리 잘게 부수어 연줄에 발라 상대방 연줄을 끊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