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여행3) 걸을 수 있을 때 여행을 떠나자
벌써 서산에 해가 걸렸어.
숙소 마당에서 맥주 마시는 사내들 옆을 지나 ‘반옐라치치’ 광장으로 나갔어.
광장 바로 뒤에는 ‘돌라체’ 시장이 있고 그 너머에는 토미슬라브 광장이야.
우리 같으면 경복궁, 덕수궁, 남대문 시장이 가까이 있는 것처럼 한군데 모여있어 좋았어.
‘반옐라치치’는 우리로 말하면 ‘김구’ 선생과 같은 사람으로 이 지역의 영주였고 백작이었대.
밤늦은 시각 와인 한 잔 마시고 숙소로 돌아왔어.
둘째 날은 느긋하게 ‘돌라체’ 시장에 들러 과일 몇 가지를 샀어.
돌라체 시장은 우리나라 전통 오일장처럼 노천 시장이야.
시장에서는 흥정이 또 다른 재미잖아?
(성 마르크 성당 올라가는 골목길)
과일을 백에 짊어지고 목적지 없이 골목길로 꺾어 들었어.
두 사람 비껴가기 힘든 골목길 벽에는 낙서투성이야.
유럽이든 중남미든 얘들은 낙서하기를 좋아하는지 몰라?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나지막한 언덕 위에 성당이 나오는 거야.
자그레브 관광지 필수 코스인 ‘성 마르크’ 성당이 나오는 거야.
성당 지붕은 크로아티아 국기 문양인데 귀엽고 아담한 성당이야.
그 언덕에서 세계에서 가장 짧다는 케이블카(우스피냐차 푸니쿨라)를 만났어.
언덕에서 내려다본 자그레브 시내가 가을 속에 서서히 가라앉고 있더라.
붉은색 기와지붕과 성당의 첨탑이 어우러진 낭만적인 풍경.
(성 마르크 성당)
그런데 아내는 성당에서 미사를 참례하겠다는 거야.
아무리 자유여행이라 해도 그렇지 너무 심한 거 아냐?
이곳에서 미사를 드리면 기도 발이 좀 더 센가?
성 마르크 성당 앞 수문장 교대식을 구경하고 한참 있으니 아내가 나왔어.
어느 때 보다 평온한 얼굴로……
골목길을 기웃거리며 내려오자 카페와 음식점 골목이 나오더라.
가이드 없는 낯선 골목길을 걸으면서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어!
카페에 앉아 스테이크 한 조각에 맥주 한 병을 시켜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어.
그들이 우리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우리가 그들을 구경하는 거야.
늘어지게 여유를 부리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재미 알아?
혹시 이런 맛에 노숙자들이 집에 돌아가지 않는 거 아닐까?
(물의 마을 라스토케)
자그레브에서 이틀 머물고 ‘라스토케’라는 물의 마을로 향했어.
아침 8시에 출발 예정이었는데 1시간이나 지체하고 말았어.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데 신용카드가 안 먹혀 징수원을 찾느라 시간 걸리고
주유하느라 시간 걸리고……
‘라스토케’는 천지가 ‘물 물 물’ 하는 것처럼 마을은 가만있고 물이 마을을 구경하는 거야.
어릴 적 이발소에 가면 폭포를 그려놓은 그림 있잖아?
난 이발소 그림이 상상 속의 풍경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있는 거야.
라스토케에서 송어회 점심을 계획했는데 쟁반 피자 사 들고 서둘러 플리트비체로 갔어.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예약 시간이 촉박하여 선걸음으로 돌아섰어.
이번에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구글맵이 제대로 알려 주더라.
매표소에 다가가 휴대폰에 저장한 예약증을 보여주자 티켓을 내놓으라는 거야.
웬 티켓?
티켓이 있으면 곧바로 입장하지 하릴없이 매표소로 가겠어?
매표원 아가씨(?)는 티켓을 메일로 보냈다는 거야.
티켓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자 그녀는 스팸메일 함을 열어보라는 거야.
내가 안 받았다면 안 받은 거지 스팸메일 함을 열어라, 말라하는 거야?
스팸 메일함, 휴지통 다 뒤져봐도 없는 거야.
나 완전히 바보 되는 날이었어. 딸아이 앞에서….
알고 보니 그들의 행정착오였어.
간신히 티켓을 발급받아 입장을 하려는데 입구를 찾을 수가 없는 거야.
생각해봐! 서울 대공원 가서 입구 못 찾는다면 바보 아냐?
가만히 보니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더라고.
입구는 구름다리를 건너 도로 건너편에 있는 거야.
(플리트비체 호수)
‘플리트비체’는 마치 계단식 논처럼 호수들끼리 물을 주고받는 거야.
아래 호수는 위에서 물을 받고 위 호수는 또 그 위 호수에서 물을 받고….
물꼬라고 알아?
위 논에서 아래 논으로 물이 흘러 들어가는 수로.
그 물꼬를 지키려고 옆 논 아저씨랑 싸우시던 어머니가 떠올랐어.
모내기 끝난 바짝 말라가는 논에 물을 받으려는……
그런 말 있잖아?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젖먹이 목구멍에 젖 넘어가는 소리와
내 논에 물들어가는 소리라고..
난 언제 커서 저 아저씨를 이길 수 있을까?
어머니는 그렇게 억척스럽게 살림을 일궈냈어.
그곳 호수는 사방이 물꼬야
옥빛 호숫가를 논두렁 걷듯 가로지르기도 하고,
배를 타고 건너기도 하는 트래킹하는 코스야.
‘라스토케’에서 사 온 쟁반 피자를 꺼내 먹으니, 마치 소풍 온 기분이었어.
근데 그 피자는 왜 그리 짠지, 마치 소금물에 담가서 만든 것 같은 맛이었어.
호수에 피자 쪼가리를 던졌더니 피라미(?)들이 우르르 달려와 먹이다툼을 하는 거야.
석회암 지대인지라 바닥은 백화현상으로 수생식물이 자라지 못해서 먹거리가 없었어.
참 많이 걸었어. 2만 보가 넘었으니….
트래킹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가는데 빗방울이 긋기 시작하는 거야.
차에 올라 숙소를 찾아가는데 비가 더욱 거세지고 금세 어둑해지기 시작했어.
와이퍼가 밀고 가는 빗방울, 쏟아지는 장대비 속으로 달리는 기분이 어떤 줄 알아?
고슬고슬한 차 안에서 비를 구경하며 적당히 밀려오는 피곤함 속에 숨어있는 낭만 같은 것.
구글지도가 알려준 위치에 도착해 보니 농가 세 채만 있는 외딴 동네였어.
지도가 찍어준 위치에 차를 세웠으나 수북한 풀들이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어.
좌우 농가를 살펴보았으나 아무리 봐도 숙소 분위기가 아니야.
오른쪽 농가에는 장작 패는 사내가 보였고 왼쪽 불 켜진 농가는 차가 들어가는 입구가 없는 거야.
장작 패는 사내가 눈길을 안 주는 거로 봐서 그 집은 숙소가 아닌 것은 분명했어
‘구글 지도가 잘못 작동한 건가?’
내게 구글지도는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었어.
그곳을 빠져나와 다시 위치를 찍고 숙소를 찾아 나섰어.
가끔 지도가 위치 좌표를 잘못 수신하여 엉뚱한 곳을 알려 줄 때도 있잖아?
지도를 보고 차를 몰았는데 또다시 그 위치를 알려 주는 거야.
별수 없잖아?
차를 세우고 비에 젖은 풀밭을 가로질러 왼쪽 불 켜진 농가로 향했어.
그랬더니 내 또래의 남자가 현관문에 서 있더라고.
여기가 ‘아파트먼트 나타샤’냐고 물으니 맞다고…..
얼어 죽을 아파트? 농가이구먼.
그 주인 사내는 차 소리만 나면 예약한 손님인가 하고 기다렸대….
알고 보니 엉뚱한 곳에 출입구가 있었어…
우리나라 지도보다 정확도가 엄청 떨어지는 거야.
구글지도로 위치를 찾을 때는 대충 그 근방에서 내려 찾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
숙소는 자그레브와는 달리 너무나 깨끗하고 좋았어.
‘긴 머리 소녀’라는 유행가 알지?
밤새도록 세찬 비가 내리는 이국의 농가에서 허밍으로 ‘긴 머리 소녀’를 부르며 잠에 빠졌어.
새벽에 눈을 뜨니 안개가 자욱이 끼어 5m 앞도 안 보이는 거야.
이렇게 비가 많이 와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는 물이 많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