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여행2) 숙소찾아 3만리
어쨌든 비행기를 탔어
걱정이 태산 같은데 그래도 딸아이가 있어 조금 안심이 되었어.
러시아 ‘아예로플로트 항공사’ 표를 구했는데 모스크바에서 5시간 환승하는 거야.
지나고 보니 차라리 그게 더 나았어.
비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비행은 ‘나르는 감옥’ 아냐?
화장실도 좁고 불편하고.
근데 회장실 갈 때는 용기가 있어야 해. 너도 그래?
파란 불이 켜져 일어나려고 하면 어느새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거야.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 화장실 문을 못 열면 어쩌지?
이번 비행기는 가운데를 밀어 여는 것이 아니라 손잡이를 아래로 내리는 방식이었어.
좌석이 통로 쪽이면 그나마 나아.
우리는 세 사람이 각각 떨어져 중앙 쪽에 앉았어.
딸아이 또래 처자 둘이 각각 통로 쪽 앞뒤로 좌석을 차지 한 거야.
나는 속도 모르고, 일행이면 자리를 바꿔 앉자고 했지.
뒤에 앉은 아내와 나란히 앉고 싶어서….
수도인 자그레브 공항은 한적했어.
우리나라 제주공항보다 작으면 작았지 결코 크진 않더라고?
드디어 자유여행이라는 고생길에 들어섰어.
입국 수속을 마치고 입국장에 나갔으나 나를 찾는 렌터카 피켓은 보이지 않았어.
12:20분에 도착하여 짐 찾고 13:30쯤 만나기로 했는데 12:40분에 게이트를 빠져나온 거야.
아내와 딸아이 앞에서 태연한 척하고 두리번거렸으나 끝내 피켓은 보이지 않았어.
최후의 보루가 흔들리면 안 되잖아. ㅎㅎ
대충 난감해지기 시작했어.
두리번거리다 입국장 왼쪽에 열 지어 앉은 렌터카 회사들 카운터를 발견했어
우리나라도 렌터카 회사가 공항 입국장에 있는가?
근데 보증금(Deposit) 1,000유로와 추가 운전자 40유로는 현장 결재야.
보증금은 환급은 언제 받느냐고 물으니 차량 반납할 때 받는다나 어쩐다나?
보증금은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나 예기치 못한 큰 사고 날 때 공제하는 돈이래.
근데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를 실시간으로 부과한다는 말인가?
설마 IT 강국인 우리나라보다 더 시스템이 잘 되었으려고?
차량을 인수하는데 차량 평면도, 전, 후, 측면도에 현재 상태를 표시하더라고....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흠집도 표시해 놓고 위치를 알려주는 거야.
'야 이거 큰일 났다. 저 정도 흠집까지 표시하다니'
잘못하면 반납할 때 애먹을까 봐 차를 모시는 처지가 되고 말았어.
재수 없게 왜놈 도요타 차량이었어.
트렁크에 케리어 실을 때도 조심, 문 닫을 때도 조심.
마치 상전 모시듯 신경을 쓰며 구글 지도를 열고 숙소로 향했어.
운전면허증 처음 따고 도로 연수 할 때처럼 버벅대며 숙소 부근에 도착했는데
도로를 차단기가 막고 있는 거야.
이상한 건 어떤 차는 들어가는데 경비는 나를 보고도 도대체 열어줄 생각을 않는 거야.
‘근데 차단기를 도로에 설치한 이유가 뭐지? 아파트 입구도 아닌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돌라체’ 시장 출입구였어.
우리 계획은 숙소(아파트톱센터)에 짐을 풀고 공용주차장에 주차할 계획이었는데…..
도로 가에 차를 세우고 지도를 보니 숙소까지는 한참 거리였어.
딸아이가 숙소를 알아보고 오겠다며 내 폰 까지 가지고 나갔어.
아이폰보다 안드로이드폰이 구글 지도 안내가 섬세한 것 같더라고.
아내야 애당초 패키지여행 선호자였으니 있으나 마나.....
우리는 아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할 일이 없었어.
혹시 교통순경이 차 빼라고 할까 봐 비상등 켜 놓은 채 조마조마.
딸아이는 나간 지 30분이 되어도 안 돌아오는 거야.
생각해봐. 물도 설고 낯도 선 곳에서 기약 없이 기다리는 기분이 어떤지.
시간이 지날수록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험상궂게 보이고 그곳이 우범지대처럼 보이는 거야.
아내도 걱정되었던지 딸아이 찾으러 간다고 나섰는데 벅수나 다름없지 뭐.
구글지도라는 말만 들었지 첨 보는 사람인데…...
그러고 10여 분 지났나?
아내가 힘없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나보고 가 보래.
운전자 없이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딱지라도 끊으면 어떻게 하지?
딸아이가 갔던 길을 따라가니 ‘한식집’이라고 쓰인 간판이 보이는 거야.
얼마나 반가운지 그 기분 알겠어?
구세주를 만나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다짜고짜 문을 밀치고 들어갔으나 푸른 눈의 청년 종업원(?)이 맞아 주었어.
왕 실망하고는 더듬더듬 ‘아파트먼트 톱센터’를 찾는다고 말했더니 고개를 갸웃하는 거야.
숙소 이름이 ‘아파트먼트’이니 누구나 알아볼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가 봐.
그도 자기 휴대폰으로 내가 말한 곳을 찾는 거야.
요리조리 지도를 키워보더니 알겠다며 설명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내 휴대폰은 딸애가 가져가 버려서 연락할 길마저 막혔어.
난 그야말로 나침반 없는 배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 같았어.
그 사람 휴대폰은 온통 영어로 나오니 들여다봐야 어디가 어딘지 모르지.
한국에서도 가끔 네이버 지도로 길 찾기 할 때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헤매는데…..
이미 방향감각이 상실된 멍청이한테 손짓.발짓으로 위치를 알려주는 거야.
그곳까지 나를 데리고 가주면 좋으련만 그건 내 생각이지.
몰라도 알아듣는 척하고 식당을 나올 수밖에 없었어.
난감해진 나는 하릴없이 딸애가 갔던 방향만 바라볼 수밖에……
여행은 고사하고 딸아이 납치당한 거 아닐까?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서 있는데 송골송골 땀이 밴 얼굴로 딸아이가 나타났어.
‘하느님. 감사합니다’
마치 내가 딸아이를 찾아오기나 한 것처럼 데리고(?) 돌아오니
얼음처럼 굳어있던 아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거야.
(무식이 용감했던 반옐라치치 광장 앞)
지도에서 점선으로 위치를 표시한다는 것은 걸어서 가라는 뜻이잖아?
근데 500m는 훨씬 넘는 거리를 케리어를 끌고 간다는 건 좀 무리 아냐?
우리는 숙소가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짐을 내리기로 하고
딸아이가 말하는 위치를 찾아 나섰어.
우리가 있는 바로 뒷길인데 일방통행인지 차들이 모두 돌아나가는 거야.
뒷길로 들어가는 입구를 더듬더듬 찾아갔는데 차량 통행 금지구역으로 잘못 들어선 거야.
거 있잖아? 우리도 휴일이면 '차 없는 거리' 제도를 시행하는
유럽은 트램과 자동차가 함께 다니잖아.
사람들은 휘둥그레 쳐다보고 뒤에서는 트램이 쫒아오고.
혹시나 경찰이 부를까 봐 불안하게 운전하다 보니 잘못하면 큰 사고 날 것 같았어.
(더이상 진입이 안되는 곳 - 아내와 케리어를 내려 놓은 곳)
다시 구글 지도를 열고 처음 그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이번에는 렌터카가 말썽이야.
운전석 대시보드에 ‘Airbag’이라는 글자와 함께 사람 모양의 이모티콘 세 개나 나타난 거야.
그것까지는 좋은데 계속 삑삑 소리를 내면서….
차를 세우고 문을 열었다 닫아보고 트렁크도 열었다 닫아봐도 계속 소리가 나는 거야……
그래도 내가 군 복무 때는 자동차 정비도 했다는 거 아냐? 정비사 자격증도 있고…..
시동을 껐다가 켜고 어찌 어찌하니 증상이 없어졌어.
내가 왜놈 차를 렌트를 한 죗값을 받는 건지 어떤 건지.
간신히 처음 그 자리에 돌아와 아내와 캐리어를 내려놓고 공용주차장을 찾아갔어.
공용주차장을 앞에 놓고 지나치는 바람에 다시 10분 이상을 돌아 간신히 주차했어.
주차요금을 보니 하루에 8유로라는데 요금 산정 기점이 몇 시부터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나중에 알고 보니 입차 시간부터 24시간에 8유로니까 11,000원 정도야.
그나저나 30분이 훨씬 지났는데 길가에 남겨 둔 아내는 별일 없는지 걱정이 되는 거야.
주차하고 바쁜 걸음으로 아내가 있는 곳에 갔더니 그대로 장승처럼 서 있더라고. ㅋㅋ
우리는 케리어를 끌고 숙소를 찾아갔어.
숙소는 ‘반옐라치치 광장’ 앞을 지나 그리 넓지 않은 도로 가에 있었어.
마치 ‘팔려 가는 당나귀’라는 동화에서처럼 사람들이 우리만 쳐다보는 것 같아
어찌나 창피하던지.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자그레브에서 뭔 놈의 창피가 있을까마는……
숙소는 딸아이가 헤맬 수밖에 없는 구조였어.
(자그레브 숙소)
간판도 없고 아파트도 아닌 낡은 3층 집이었어.
마당에 들어서자 오른쪽에는 맥줏집과 커피집이 있고 ‘ㄱ’자로 된 2층과 3층이 숙소야.
추레하게 생긴 사람들이 마당 식탁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우리를 바라보는데
기분이 별로였어.
한때는 화류계에서 놀았음 직한 퇴계 같은 주인 여자가 2층으로 안내했어.
낑낑대고 캐리어를 들어 올려놓고 침대에 벌렁 눕고 보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어.
무려 3시간을 헤매고 보니 벌써 5시가 넘어가는 거야.
‘아! 자유여행은 이렇게 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