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의 미학
사람들은 정말 바삐 살아간다.
지하철 에스컬레터에서 왼쪽을 차지하고 서 있으면 마치 죄인인 것처럼 느껴지고
전철에 올라타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피곤에 쩔어 잠들거나 스마트폰에 눈을 박고
바삐 살아가는 것이 지하철 풍경이다.
얼마 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혜민 스님의 글을 읽었다.
멈춘다는 것은 바삐 살아오는 과정을 반추하는 여유가 아닌가 싶다.
인디언은 말을 타고 정신 없이 달리다가도 잠시 멈춰
자신이 영혼이 뒤따라 오는지 확인한다고 한다.
아마 그들은 몸과 마음의 일치를 실현하기 위한 멈춤의 미학이라는
DNA를 소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들은 자연을 위대한 정령으로 여기고 사람은 자연에 속한 일부이기에
자연을 사고 파는 것 조차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풍광이 아름다운 장소를 사고파는 자체를 부정하고 더불어 나누어야 하는 자연을 공유하자는,
어찌 보면 원조 환경주의자들이 아닌가 싶다.
나는 왜 바쁜가?
세상이 바쁜 것인가 아니면 내 마음이 바쁜 것인가?
결론은 내 마음이 바쁘다는데 있다.
멈추어 뒤돌아 볼 여유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기 때문이리라.
나는 왜 외로운가?
우리는 스팩을 쌓기 위해 주변과의 소통이 단절된지 오래 되었고 동료는 있지만
친구가 없는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스팩은 오로지 전장에서 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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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사에서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스팩을 갖추고 입사한 나는 퇴근시간이 지났는데도 바쁜 척 시간을 때우는 경우는 없었는가?
혹시 상사들은 10분전에 퇴근하겠다며 부하직원이 머리를 긁적거릴 때
승리감에 빠진 적은 없었는가?
일이라는 것은 짧은 시간일지라도 몰입을 하면 생산성은 배가된다.
이 글을 읽은 상사들은 부하직원들에게 방향성과 일정만 제시하고
부하직원들이 농치던 말던 상관하지 않은 개방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의미가 없고,
눈깜짝할 새에 쏜살같이 지나가버릴 것이다.
사랑은 과거도 아닌 그렇다고 미래도 아닌 가장 소중한 현재를 정지시켜놓는 마력을 갖고 있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옥상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멈춘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는 무소유와도 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무소유는 소유하지 않는 다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집착하지 않고 버리고 떠날 수 있을 때 진짜 자유인이 된다.
우리는 나이 드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삶의 열정이 식는 것이 두렵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현직에서 은퇴를 한 나는 얼마 전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 적이 있었다.
직장을 나간다는 것은 내게 족쇄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는가?
물론 지금도 그 후유증이 말끔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진정한 진정한 자유인은 어떤 사람일까?
잠시 멈추고 되돌아 보며 여유를 갖고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120727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