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이야기들

보림사 들러 공룡 발태죽

창강_스테파노 2011. 10. 8. 12:32

 



어머니와 여행을 떠날 때는 덩달아 마음이 부푼다.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스스로도 역마살이 끼어있다고 말씀하신다.

차를 타고 여행을 가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단다.

음식을 먹으면 멀미를 하기 때문에 에둘러 말씀하시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다.

그런데도 나서기를 좋아하시는 걸 보면 분명 역마살이 끼어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나 또한 누구 못지않게 드라이브를 좋아한다.

그러고 보면 내게도 역마살 유전인자가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속도로만 아니라면 운전이 싫지 않다.

자동차 Navi 에도 없는 시골길 기웃거리기를 좋아한다.

10월 연휴를 맞아 드라이브를 제안하자 어머니는 친구 분 4명을 소집했다.

집나간 며느리도 전어 굽는 냄새에 되돌아온다는 전어를 먹기로......

 

전남 장흥 유치재를 넘어 보림사를 거쳐 보성으로 목적지를 잡았다.

도암면 운월리와 장흥 유치간 터널 공사를 하고 있는 유치재는 자동차도로가 아니다.

좁은 길이라 차를 만날까 두렵고 혹시나 차가 뒤로 밀릴까 싶어 겁이 나기도 한다.

이러다 길이 끊기지나 않을까? 혹시 차를 돌릴 수 없을까 불안감이 밀려온다.

기름도 바닥에서 한 눈금 밖에 남지 않았다.

인공 때는 山사람(인민군)들이 진을 쳤다는 외진 산길!

도로라기보다는 차라리 임로(林路)라고나 할 만큼 폭이 좁은 비탈길이다.

다행히 올 여름 큰비에 상한 산길 몇 군데는 시멘트로 보수해 놓아 마음이 놓였다.

 

7순, 8순 노인들은 운전하는 내가 긴장하건 말건 마치 소녀가 된 듯 왁자지껄 귀가 따갑다.

화순댁은 어떻고 돔발네는 어떻다며 어린애들처럼 상대방 흉보는 소리도 심심치 않다.

가슴 졸이며 산마루에 차를 세우자 삶아온 옥수수를 한입 물고 즐거워하신다.

그러다 내 유년시절 야산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풀을 부인병에 좋다며 뜯는다.

지우초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풀은 나뭇지게나 풀지게에서 억새와 함께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그러고 보니 흔하던 풀인데 관악산에서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지우초)                                                   (취나물 꽃)

“저것은 취 꽃이여”

“취꽃? 취나물 꽃?”

벌개미취를 닮은 하얀 꽃은 취나물 꽃이란다.

봄철 음식상에 올라 입맛을 당겨주던 취나물이 가을에는 이렇듯 청초한 꽃을 피우다니!

내가 보기에는 벌개미취 동생이라면 꼭 맞을성싶다.

벌개미취도 ‘취’자가 들어가니 사촌간은 아닐까?

그나저나 취나물로 뜯겨가지 않고 이 가을까지 버틴 기상이 가상하다.

 

가을이 되니 산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나름 한 몫들을 하고 있다.

나는 지난여름 어떻게 보냈고 이 가을에 거두들일 것은 무엇인가?

혹여 영혼마저 메마른 피폐한 삶으로 시간만 축내지는 않았던가?

 

유치재를 넘으면 장흥 보림사라는 절이 나온다.

인도와 중국 그리고 이곳을 포함해 3보림이라 일컫는다는 보림사는

깊어가는 가을 적막을 털어내려는 듯 햇살 한줌 머금고 힘없이 웃고 있었다.

입구 비자나무는 간밤 사나운 바람에 온몸을 뒤흔들어 비자를 수북이 털어 내놓았다.

어머니와 친구 분들은 비자줍기에 열중이다.

 

절에는 주목나무와 엇비슷한 비자나무가 많다.

절에 비자나무가 많은 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어쩌면 스님들이 사철 푸른 비자나무의 기상을 받아

수도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하기위해 심어놓은 것은 아닐까?

아니면 비자의 떨떠름한 맛으로 속세와 인연을 끊고

고소한 맛으로 불가에 전념하라는 의미는 아닐까?

 

보림사 해우소는 유난히도 깊다.

저 아래에 변들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다 보니 뾰족한 꼭지가 없었다.

오줌을 싸려고 터진 밑을 내려다보니 어지럼증이 느껴져 오줌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율포로 돌아들어 갯마을횟집에 들어서자 차례를 기다리는 꼬리가 길게 늘어져있다.

줄을 설만큼 인기 있는 집이라면 뭔가 특별할 것만도 같아 우리도 줄을 섰다.

원래 손님이 법석이는 음식점이 맛 또한 좋다니 밑져야 본전 아닌가?

전어 회무침 초장 맛이 좋은 건가 시장이 반찬인가?

운전만 아니라면 소주 한잔이 딱 어울릴 텐데 그리 못한 것이 아쉽다.

어머니와 친구 분들 또한 맛있게 드시는 것을 보니 적은 돈으로 온갖 생색은 다 낸 편이다.

그래! 이번 여행이 혹시 마지막일지도 모르잖은가?

팔순이 넘은 어머니와 친구해 주시는 당신들이 얼마나 고마운가?

이렇게 형제처럼 외롭지 않게 지내는 당신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회천면 비봉 공룡알화석지로 향했다.

공룡알이 타조알 정도에 불과하다니 아이러니컬하다.

그 큰 몸집에서 콩만한 알을 낳고 그 큰 몸으로 알을 품었다니......

네발짐승이 알을 낳았다니 혹시 학자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차를 몰아 돌아오는 길에는 억새가 하얗게 나부끼며

깊어가는 가을을 더 바삐 재촉하고 있었다.

 

‘어여 어여 준비들 하게.. 날이 추워지니...’

득량만 바다를 뒤로하며 서녘을 넘는 석양이 애처럽다.

날도 황혼이고 인생도 황혼인데 난 여유 없이 왜 이리 아등바등 사는가?

 

“어머니 근디 어저께 어디어디 갔다 왔어?”

막내 여동생이 어머니에게 말을 건다.

“엉. 공룡알 하고 공룡 발태죽 보고 왔다”

발자국이던 발태죽이던 오래 오래 건강하소서.

2011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