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이야기들

아버지의 팬티

창강_스테파노 2011. 5. 27. 15:29

 

출근시간 전철입구는 어디나 붐비듯 낙성대역 입구도 마찬가지다.

무가지(無價紙)를 진열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바쁘고 방물장수가 전을 펴느라 부산하다.

방물장수 차량 본네트에는 짝퉁 가방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바삐 걷는 우리를 구경하고

반쯤열린 차창에는 소매 없는 티셔츠가 속살을 내놓고 시원하다며 한들거린다.

바닥에는 싸구려 구두와 발목스타킹이 자리를 잡고앉아 우리를 올려다보며 아침을 맞는다.


원래 그 자리는 겨울밤 군고구마를 품고 있던 드럼통 리어카가 차지했었다.

그런데 아침이 되면 그 리어카는 유령처럼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는

방물장수 차지가 되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그 한 구석지에 고무줄을 파는 할아버지가 좌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좌판이래야 라면 박스 두어 개 넓이에 갖가지 고무줄을 진열하는 것이 전부인데

내가 보기에는 고무줄을 팔려는 것보다는 심심파적으로 구경나온 게 아니가 싶다.


할아버지 좌판에는 검정 고무줄, 생고무줄, 어린애 기저귀 묶던 대롱 고무줄,

하얀색 천과 섞인 고무줄은 물론 시궁창에서 춤추던 빨간 모기 애벌레처럼

가는 고무줄도 놓여 있다.


바쁜 출근시간에 젊은 아낙이 고무줄을 한 움큼 사서 핸드백에 구겨 넣는다.

저 여인은 그 많은 고무줄을 어디에 쓰려는 걸까?

어쩌면 학교 숙제에 글라이더 날리기가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의 좌판을 볼 때마다 아버지의 팬티가 떠오르고,

느라죽(고무줄 새총)이 떠오르고, 고무줄을 끼워 굴리던 실패가 떠오른다.

아버지가 입고 있던 광목 팬티는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어느 여름날 툇마루에서 팬티만 입고 마당의 닭들을 바라보시던 당신!

팬티가 닳아 까만 고무줄이 속살을 내비추던 까칠한 광목팬티!

난 아버지의 팬티가 걸레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다시 광목 팬티를 만들 것이고 그 고무줄은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팬티가 걸레가 되던 날 나는 얼른 고무줄을 빼어 감췄다.

내가 노리고 있던 그 고무줄은 반드시 내게 필요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사립을 나서 신작로로 나가는 좁은 길목에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울타리에서 가장 멋있는 Y자 형 가지를 찜해놓았다.

언젠가 사람이 뜸하면 그 가지를 잘라 내리라.

나는 그 가지를 잘라내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

철로에 못을 올려놓고 기차바퀴에 눌러 손칼을 만들었고 쑥돌에 갈아 날을 세웠다.


논밭으로 일손이 팔리던 날 어느 날, 나는 가슴 졸이며 탱자나무로 다가갔다.

사람들이 뜸해 찜해둔 가지를 잘라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손칼로 단번에 잘라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머허냐?”

낑낑대는 나를 보며 명자 아버지가 다가오며 물으신다.

“저어...... 호랑나비 애벌레 보고 있구만요.”

깜짝 놀란 나는 생 땀을 흘리며 둘러댔다.

탱자나무에는 마치 얼룩말처럼 검은 무늬를 두른 호랑나비 애벌레가 지천이었다.


간신히 가지를 잘라내고는 얼른 자국이 나지 않도록 빈자리를 메꿨다.

탱자나무를 곱게 다듬어 꼭지에 고무줄을 매달아 멋진 느라죽을 만들었다.

난 그 느라죽으로 우리 동네 모든 참새를 잡을 꿈에 부풀었다.

모양 좋은 공기돌을 잔뜩 주워 주머니에 담고 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나가며

공기돌을 날리고 뒤란 대밭에 날아든 산비둘기에게도 날렸건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아버지의 팬티 속에서 내게로 시집온 고무줄은 멋진 느라죽이 되었건만

새를 잡은 기억은 없다.

그것은 행여 장독 깨질까봐 맘 놓고 공기돌을 날리지 못한 탓도 있다.

오래된 기억 속에 이제는 볼 수없는 아버지가 몹시도 그립다.

우리 자식들도 나처럼 그리운 생각이 날 때가 있을까?

우리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이고 자식에게 버림받는 최초의 세대라는데....


1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