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1) 천명아! 이순이가 간다!
(인천공항에서 바라본 주차장)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사그라지는 불꽃과 같다.
직장에 몸담고 어찌 어찌 하다 보니 이순(耳順)이가 내 벗이 되고 말았다.
지천명(知天命)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정년으로 달리는 시간은 너무 빨랐다.
청춘의 꿈도 어느새 쭈그러들고 아들 장가보내고 나니 벌써 황혼이란다.
회갑잔치는 남세스러운 얘기라 여행으로 대신하기로 일찌감치 마음을 정했다.
인터넷 창가에 걸린 ‘봄의 왈츠’라는 동유럽 패키지 여행상품 꾐(?)빠졌다.
동유럽하면 사회주의라는 선입감으로 인해 별로 내키지는 않았다.
자연관광을 선호하는 내게 조각이나 음악은 솔직히 관심 밖이다.
(면세점 내부에서 임금행차 퍼레이드)
자식들이 마련해준 여행을 당연한 듯 받고 보니 마음 한구석이 미안하다.
‘둘도 많다. 딸 아들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가족계획을 부르짖던 때 셋을 낳아 야만인 소리를 듣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들이 여행을 보내주는 나이가 되고 말았다.
이제 그들이 자라 꿈을 펼쳐보고자 하건만 청년백수가 강물처럼 넘쳐난다.
다행이 두 녀석은 직장을 잡아 한시름 놓았는데 딸애는 아직도 백수다.
눈치를 보니 백수 딸도 용돈 일부를 토해 낸 게 분명하다.
‘아빠 사랑해!’
백수라 항상 미안함 마음을 모르겠느냐만 사랑한다는 말로 대신하니
가슴 한켠이 싸아하게 아파온다.
(독일 화장실 이용후 잔액 쿠폰)
동유럽은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인근 국가로 여행을 떠나는 말 그대로 허브다.
잠시 머물러 화장실 몇 번 이용하고 내는 공항이용료 7만원은 너무 비싸다.
독일의 입장에서는 면세점 수입도 짭짤하고 노 나는 장사다.
우리도 하루빨리 남북통일이 되어 인천공항이 동북아시아의 허브가 된다면
중국과 일본을 관광벨트로 묶어 국익을 챙길 수 있는 한 축이 될 것이다.
그렇게 이순이에게 떠밀려 아내와 나는 동유럽으로 향했다.
“나 고백할 게 하나있어”
위스키를 더블로 마시고 나서 생뚱맞은 소리를 꺼냈다.
아내는 둥그런 눈으로 불안한 듯 눈치를 살핀다.
“나! 이 순간부터 담배 끊을께!”
“그럼 지금까지 담배 피웠다는 말이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기가 막힌지 의자 뒷통수에서 뿌리는 영화에 눈을 박고는 침묵한다.
실은 그간 아내 몰래 담배를 피웠었다.
아내가 잠든 시간에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보일러실 방충망이 떨어져버렸지만
아직도 아내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서서히 금단현상이 나타나고 온몸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이번 여행은 금연으로 인해 잡쳐버릴지도 모른다.
영화를 두 편이나 보고 자다 말다 기내식 두 끼를 먹고 나니 독일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