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이야기들

봄날 아침

창강_스테파노 2011. 4. 22. 15:11

-봄날 아침-


베란다 너머

눈꽃처럼 흐드러진 벚꽃

간밤에 내린 비로 꽃잎이 진다.


푸릉 푸릉 춤추는 산비둘기 한 쌍

날개 죽지 늘이는 사랑의 속삭임

암컷은 싫은 체 가지를 옮긴다.


하얀 머플러 두른 꿩 한 마리

살금살금 기다말고 푸르릉 날개 털며

춘정을 그리워한다.


꽃이 진자리에 돋는 새순 

가는 봄이 서러운 봄날 아침.


어제 밤 자정이 넘은 시각에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눈꽃처럼 하얗게 흐드러진 벚꽃이 어둠속에 빛나는 봄밤.

큰비가 온다는 예보를 떠올리며 뒤척거리다 잠이 들었다.

해마다 돌아오는 봄이건만 봄은 언제나 새롭게 단장을 하고

꿈 바구니를 안고 온다.

내가 꾸는 꿈이라는 것이 작심삼일이건만 꿈을 꾼다는 것은 즐겁다.

사념에 잠겨 바라보는 봄밤에 취한 작은 꿈도 아름답다.


나른한 몸을 털고 베란다 창문을 열어 젖혔다.

관악산 초입에 자리한 이곳은 내 정원이고 뜨락이다.

간밤에 구름이 몰려들더니 봄비가 손님이 되어 산자락을 적신다.

꽃잎이 지기 시작한 벚나무는 연분홍 꽃술이 자리를 지키고

파릇파릇 새순이 돋아 오른다.

혹여 내가 가는 봄을 서러워할까 봐 그 자리를 대신한다.


푸릉푸릉 산비둘기 한 쌍이 이 가지 저 가지를 나는 폼이 여간 방정이 아니다.

녀석들이 왜 안하던 짓을 하는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한 마리가 가지를 옮겨 날으면 다른 한 마리가 뒤 쫒아가고

옆걸음으로 다가가 날개 죽지를 펴면 다른 한 마리가 푸릉 날아

다른 가지로 몸을 피한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 들은 분명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암컷은 왜 그리 세침떼기처럼 시간을 끌며 애간장을 태우는 걸까?

남녀간의 사랑도 우러나와야 하듯 어쩌면 그리 똑같을까?

단숨에 짝짓기를 하면 창녀처럼 헤프게 보일까봐 내숭을 떠는 것일까?


아내 몰래 담배를 피워 물고 멀리 연주대를 바라보자

휘장처럼 내려앉은 구름이 정겹다.

꿩! 꿩!  푸르릉!

벚나무 아래에서 날개를 터는 꿩은 춘정을 못 이겨 암컷을 부르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얀 머플러를 두른 장끼 한 마리가 살금살금 기어간다.

녀석은 왜 혼자 어슬렁거리며 외톨이일까?

그리도 추웠던 지난겨울 녀석은 어디서 무얼 먹고 지냈을까?

봄은 그 조용하던 겨울 산을 깨우는 마술 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


작년 이맘때 한참동안 자지러지는 소리에 가슴이 저미던 날!

들 고양이 한 마리가 꿩을 불어 뜯고 있었던 것이다.

혹여 저 꿩이 그 때처럼 되지나 않을까 가슴 조이며 바라보자

또다시 살금살금 내 눈에서 벗어난다.


봄비는 양수다. 

만물이 양수 속에서 꿈틀거리며  성(性)에 눈을 뜨고 사랑을 노래한다.

이 비가 그치면 늦잠 자던 잠꾸러기 백일홍도 기지개를 켜겠지?

1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