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이야기들

어머니가 놓고 간 세배돈

창강_스테파노 2011. 2. 8. 00:07

 

올해 팔순을 맞은 어머니가 설을 쇠러 오셨다.

시골집에서 서울까지는 무려 5시간이 넘어 걸린다.

버스를 타도 앞좌석이 아니면 시도 때도 없이 멀미를 하시는 당신!

자식들 우르르 내려가는 것보다 당신 한 몸 움직이면 모두가 편할 거라며

일부러 힘든 것을 마다하지 않으신 당신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뿐이다.

 

 

장남인 내가 신주(神主)를 모신다는 핑계로 서울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은

순전히 서울에 몰려 사는 우리 형제들 편하자는 속내였다.

그러고 보니 고향에서 명절을 지낸지가 벌써 여러 해 되어간다.

고속도로를 밝히는 귀성행렬을 볼 때마다 이제는 소 닭 보듯 감정이 무뎌졌다

명절 때마다 치루던 귀성전쟁을 이렇게 쉽게 망각하고 만 것이다.

 

 

당신이 도착할 때쯤이면 며느리들이 몰려들어 음식 장만에 집안이 떠들썩해진다.

장남 집에서 명절 쇠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다보니 며느리들도 편해 좋다.

손자 손녀가 모두 모이고 나면 이 방 저 방 걸리는 것이 사람이다.

‘명절은 큰집에서 쇠야 한다.’

살아생전 아버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세배를 하는 것도 받는 것도 쑥스럽더니 이제는 응당 받을 나이가 되고 말았다.

아내는 이리저리 쪼갠 세배 돈 봉투를 할머니 손에 쥐어준다.

할머니가 손자들에게 세배 돈을 건네는 즐거움과 위상을 고려함이다.

하지만 손자들이 크고 보니 당신이 건네는 세배 돈보다 녀석들로부터

받는 용돈이 훨씬 많다.

당신이 쓰는 용돈이래야 약값과 가끔 양로당 친구들과 자장면 먹는 것이

전부이지만 용돈이 많아서 나쁠 건 없다.

 

 

한바탕 떠들썩한 잔치가 끝나고 하나둘 친정으로 처가로 떠나고,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떠나면 집안은 갑자기 휑해지고 텅 비고 만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한 바퀴 관악산을 돌고 내려올 때쯤이면

그제야 어머니는 시골집에 도착할 시간이다.

 

당신은 두고 온 손자 손녀 생각 허전한 가슴을 쓸어 앉고 황량한 들판을 바라보며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 태연하게 등산을 하다니 이렇게도

이기적일 수가 있을까?

 

 

“아가! 경대 서랍에 라라 용돈 넣어놓고 왔다.”

산을 돌아 들어오니 전화기 저편에서 시골집에 도착한 어머니의 마른 목소리가

건너온다.

 

어머니가 말한 경대 밑에는 하얀 봉투가 배를 불룩 내밀고 있다.

당신이 받은 용돈을 뚝 잘라 아무도 몰래 놓고 내려가신 그 맘이

가슴 먹먹하게 하는 사랑인 것을......

11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