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 터진 선반
대전 지하철!
꼬마 자동차 딴 느낌
책 꺼내들고 가방을 올리는 순간
재래식 회장실에 똥 떨어지듯
밑 터진 선반에서 쿵 떨어지는 가방!
아가씨비명과 고통스런 할머니 표정
‘죄송합니다 서울인줄알고.....’
선반을 바라보면 언제나 시골집 천정에 가로질러진 시렁이 떠오른다.
시렁에는 검은 홑청에 하얀 단을 댄 이불과 오래된 석작이 있었고
석작 속에는 어린 내가 알 수 없는 부적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시렁 바로 밑에는 훠이 훠이 옷을 걸 수 있는 대나무 횟대가 있었고
그 곳은 치부가 드러날 것 같은 물건들의 훌륭한 도피처가 되었다.
시렁은 대부분 두 개의 기다란 대나무나 튼실한 나뭇가지를 가로질러 만든다.
그러한 시렁이 전철이나 고속버스에서는 짐을 얹는 선반이 되었다.
나도 요즈음에는 전철의 선반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가방 속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어떤 가방은 노트북이 분명하고 어떤 가방은 책 한권 들었음직하고......
대부분 남자들은 뭔가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난 가방이 없으면 어딘가 불안하다.
내 가방 속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우산, 카메라, 돋보기, 연필지갑, 외장하드디스크, 소설책한권, 노트 두 권....
갑자기 비가와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어쩌다 장거리 여행을 가더라도
책이 있어 심심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가방의 무게가 그리 만만치 않고 전철에 오르면
의례 선반에 가방을 올리는 것이 이제는 몸에 배어버렸다.
하지만 전철 선반은 언제부턴가 무가지를 버리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 무가지를 회수하는 노인들은 우리의 또 다른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키가 닿지 않는 선반에 발돋움을 하여 간신히 무가지를 회수하는 할머니!
그것도 경쟁이라고 서로 많이 차지하려는 가슴 아픈 현실!
얼마 전 아침 일찍 대전에 내려갔다.
대전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주욱 내려가면 한 참 후 지하철을 만난다.
대전 지하철은 마치 꼬마자동차처럼 폭이 좁고 길이도 작아 아담하다.
낯선 지방이라 팔려 나온 촌닭처럼 내 행동 어딘가 어설프다.
전철에 오른 나는 책을 빼들고 선반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순간 가방은 이상하게도 힘없이 내 손에서 빠져 나간다.
‘서울에서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꼬마 전철은 이런가?’
“터억!”
마치 어릴 적 재래식 화장실에서 똥 떨어지듯
누군가의 가방이 선반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그 가방은 머리를 곱게 빚은 처녀의 이마에 1차 충격을 가하더니 옆에 앉은
할머니 어께를 치고는 다시 그 처녀의 손 위에 안긴다.
영문을 모른 나는 가방 주인을 찾느라 옆 사람을 쳐다보니 그 사람이 오히려
나를 빤히 바라본다.
센스가 형광등이라더니 뒤늦게 사태를 짐작한 나는 얼굴이 달아올라 사과를
구했다.
“서울인줄 알고......”
그래 서울이 어쨌다는 말인가?
이건 사과도 아니고 쓸개 빠진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처녀로부터 가방을 받아 들고 그녀를 바라보니 계속 아픈 표정을 짓는다.
“다치지 않았어요?”
정신을 가다듬고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할머니와 아가씨 사이에 말을 던져놓고
그녀를 바라보자 연신 아픈 표정이지만 괜찮단다.
모두들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도 그럴 것이 멀끔하게 생긴 사람이 저승사자에게 넋을 빼앗기지 않고서야
그런 엉뚱한 짓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책을 보고 있었지만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반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곳만 밑이 터진 것인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1009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