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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여행을 마치고(5)

창강_스테파노 2010. 6. 25. 23:44

어머니!

저는 당신에게 누구인가요?

천륜이란 게 무엇일까요?

이번 팔순여행이 힘들지 않았나요?

여행은 일찍 일어나야하고 많이 걸어야 하니 젊은 사람도 힘들지요.

음식마저 기름투성이라 당최 먹을 것이 없었지요.

당신은 일행 눈치 보느라, 아니 자식이 걱정할까봐 억지로 드셨지요.

 

생각해보면 당신은 저를 10개월간이나 뱃속에 간직하고 다녔죠.

그러고 보면 육남매를 순산했으니 햇수로 5년간이나 당신은 우리들을 지니고 다녔고

수유기간을 합하면 무려 14년간을 우리에게 헌신하시었지요.

내 인생에서 군대생활 3년이 얼마나 아깝던지요.

정지된 시간을 보상받지 못해 억울하기까지 했지요.

그런데 당신은 그 많은 세월을 자식들에게 바치고도 아무렇지도 않으셨지요.

 

어릴 적 당신은 그러셨지요.

높은 나무에 올라가지 말고 물가에 가지 말라구요.

귀에 장대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탓에 저는 아직도 수영에는 맥주병이고

이상하게 높은 바위에 올라가면 항문이 근질거리더라구요.

남들은 고소 공포증이 오면 오금이 저린다는데......

 

이번에 당신은 저를 어릴 적 그 시절의 범생이로 만들었죠.

“사진 찍는다고 헛눈 팔지 말고 따라 다녀라!”

6순이 낼 모래인데 가이드 놓칠까봐 걱정이 되던가요?

행여 자식 잃어버릴까 두리번거리느라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저만 찾았지요.

 

어머니!

당신은 제게 누구인가요?

무한한 사랑도 모자라 몸 일부를 떼어주고 당신의 진액을 뽑아 젖을 물리던 당신은.....

마치 매미 허물 벗듯 당신은 껍데기 만 남아있더라구요.

황산의 가파른 계단을 운동시킨다는 핑계로 가마를 태워드리지 않았던 것이 후회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가끔 당신이 귀찮을 때도 있었지요.

당신이 갑자기 아플 때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으니 난감하고 귀찮더라구요.

그런데도 당신은 당신의 몸을 나누어 준 죄(?)로 조건 없이 희생만 하셨죠.

이것이 바로 하늘이 갈라놓기 전에는 떼어낼 수 없는 연인가 보죠?

 

그런 당신에게 일 년에 몇 번 얼굴 보이고 용돈 부치는 것으로 효도를 다한 양

착각하고 있었지요.

당신의 팔순기념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니 한편으로는 홀가분하더라구요.

자식은 이런 마음인데 당신은 어떤 기분이었는가요?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무한책임을 진 영원한 채무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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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떠밀려 떠난 여행!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를 어머니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당신이 큰 아들과 함께한 그것만으로 족하다면 모를까.

마치 물가에 놓은 애처럼 애를 태우게 만들어 편하게 모시지 못했다.

 

어머니와 나는 정말 어떤 인연일까?

머리칼을 뽑아 짚신을 삼아드려도 그 은혜 갚을 길이 없는 지고지순한 사랑.

팔순 여행 기념이라며 모시고 간 여행이 오히려 힘들게 한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우리와 함께 할 날이 그리 많지 않은 당신에게 자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용돈 몇 푼 부쳐주고 마치 큰 효도나 하는 것처럼 드러내기를 좋아하지는 않았는가?

 

서호의 유람선에 역광으로 비친 어머니의 얼굴을 무표정한 모습이었다.

가슴이 짠해져 고개를 돌리자 류허탑(육화탑)이 말없이 나를 보며 어쩔 줄 모른다.

근데 서호에서 유람선을 타는 의미가 뭘까?

나는 왜 한강 유람선보다 훨씬 못한 이 배를 타고 의미를 찾으려 애를 쓰는가?

스토리텔링이 없다면 우중충한 서호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서호는 중국 4대 미인 중의 하나인 서시가 서호를 바라보며 오나라 왕에게 애교를 부려

결국 오나라를 망하게 하였다는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단다.

오나라에게 굽신거리며 당하기만 하던 월나라가 서시를 보내 미인계로

복수하는 스토리는 결국 우리를 유람선위에 올려놓게 만든 원인제공자였다.

 

서시는 침어(侵魚-고기가 가라앉다)라는 별칭을 들을 만큼 자색이 수려하여 고기도

넋을 놓고 헤엄치기를 멈추고 가라앉았다고 하니 중국인의 허풍은 알아줄 만하다.

 

항주공항으로 돌아가는 리무진 안에서 지난 4일 동안의 여정을 떠올려 보았다.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발품 팔아 고생을 감내해야 추억으로 남는다.

잘 먹고 편한 잠을 자려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음식이 안 맞아도 현지식을 먹어야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어머니와 함께한 여행은 그 틀을 깨고 있었다.

휴양지로 모시고 가면 좋았을 것을.......

올 가을에는 손자들까지 2다스가 넘는 당신의 자식들이 한집에 모여 지지고 볶으며

하룻밤을 함께하며 재롱잔치를 벌여야겠다.

 

-황산 여행을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