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솔루션 하나 백만명을 먹여 살린다
봄 햇살이 눈부신 아침!
창밖 광주-송정간 도로변에 벚꽃이 활짝 폈다.
거리가 환해지도록 꽃망울을 터트리는 그들의 향연에 멀미할 듯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들은 어떤 오묘한 재주가 있어서 겨우내 가슴에 품고 있던 한을
주물러 터트리는 걸까?
딱딱한 나무에서 부드러운 꽃을 토해내는 마술 같은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시도 때도 없이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면 이것이 바로 소프트웨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하드웨어적인 요소가 승부를
결정지었다.
판박이 대량생산이 시장을 견인하던 산업사회였던 그때는
고객의 선택권은 극히 미약했다.
하지만 고객의 눈높이가 달라지면서 똑같은 물건이라도 차별화 된
맞춤형 상품이 눈을 끌기 시작했고 이제는 대량 판박이 상품들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고도정보화 사회로 들어섰다.
몇 해 전, 그러니까 10여 년 전의 일이다.
원래 점퍼가 어울리지 않아 쳐다보지도 않는 나에게
아내가 점퍼를 사들고 들어왔다.
그런데 그 점퍼가 첫 눈에 맘에 든 건 디자인과 인조견사의 촉감이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그 점퍼를 입고 출근하던 어느 날 내 점퍼와 색깔만 다를 뿐
모양이 똑같은 점퍼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환경미화원도
건설공사 현장에서도 눈에 띄었다.
난 내가 좋아하는 그 점퍼를 이튿날부터는 입지 않고 말았다.
그 점퍼가 의미하듯 판박이 대량생산이 생산비 절감은 가능하지만
천편일률적인 모양새는 결국 고객으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이제는 생산원가를 따지는 굴뚝산업은 중국이나 인도의 추격을
따돌릴 수가 없다.
비록 하이테크 산업이라고 할지라도 금형에 판박이 생산을 반복하는 것은
더 이상 우리의 성장 동력이 될 수가 없다.
지금의 경영환경으로 보아 선진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될 개연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국경이 없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차별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휴대폰 신 모델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알고 보면
차별화를 지향하는 소비자의 욕구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판박이 생산에 올인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소프트웨어다.
얼마 전 중소 솔루션 업체에서 OS를 개발하였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접했다.
운영체제라 불리는 시스템 소프트웨어인 OS는 선진국의 독점물이
되다시피 한
컴퓨터의 심장과 같은 핵심 소프트웨어다.
우리는 대학에서 정규과목으로 운영체제와 DBMS(데이터베이스 관리시스템)를 배운다.
이미 선진국에서 개발한 솔루션 사용법을 배운다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나는 70년대 초반 일본의 후지쯔 기종인 FACOM이라는 주전산기를 통해
남보다는 빨리 컴퓨터를 접할 수 있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OS4/F4라는 운영체제를 장착한 대형 컴퓨터였다.
컴퓨터에 작업명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JCL(작업제어명령어)에 대한
문법을 알아야하는데 JCL의 첫 글자는 자국의 화폐단위인 ‘¥’이었다.
자국의 화폐기호를 이용하여 국력을 과시하던 걸 보고 무척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지금이야 ‘//’로 시작되는 JCL을 쓰고 있지만 말이다.
우리는 남이 만들어 놓은 운영체제를 배우기 급급했고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기술적인 장벽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중소 솔루션 업체가 국산 DBMS에 이어 OS까지 개발했다고
하니 이보다 더 큰 경사가 어디에 있을까?
PC의 OS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가 OS 시장을 장악하여 이제는
전 세계 모든 PC가 윈도우에 종속되어있을 만큼 그들이 누리는 자부심과
효과는 대단하다.
오죽했으면 빌게이츠가 한 사람이 10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했을까?
이제는 세월이 흘러 소프트웨어 강국인 인도를 벤치마킹하고 IT 강국인
우리나라를 벤치마킹하러 오고 있다니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IT강국이라는 말을 꺼낼 때마다 정말 우리가 IT강국인지 되묻고
싶을 때가 많다.
정보고속도로라 칭하는 인터넷 망의 경우 이웃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며 절치부심한 결과 각 가정마다 광케이블을 직접 연결한
FTTH를 실현하였는데 우리는 아직도 가입자망은 구리선이나 USB
케이블이 대부분인 바 IT강국이라는 말에 도취되어있는 건 아닌가 싶다.
그동안 잘 깔린 통신 인프라 덕분에 휴대폰이 꽃을 피웠고 유독
호기심이 강한 국민성 때문에 Alliance의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소프트웨어의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은 판박이 산업이나 다름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제는 후발 주자인 중국이 모방의 귀재답게 우리를 추월하고 있다.
노키아가 2만 원짜리 휴대폰을 생산하는가하면 인도의 타타는
200만 원짜리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우리도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분야에서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소프트웨어이다.
우리는 왜 ERP(전사적자원관리)를 SAP과 Oracle에 의존해야 하는가?
공개소프트웨어를 육성하여 선진국의 로열티 장벽을 뚫어야 할 것이고
컴퓨터의 심장인 OS나 DBMS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육성시켜야한다.
그동안 민간 기업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핵심기술을 확보한 과정을
보면 눈물 날만큼 고마운 일이다.
정부는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한다며 뭘 지원했는가?
이제는 정부의 어는 부처도 이공계를 대변할 부서는 없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고용효과가 높은 그리고 가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쉬운 분야이다.
하지만 정작 소프트웨어 산업은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하루에도
수백 개의 소프트웨어 중소기업이 문을 닫고 있다.
그들에게 산업용전력을 공급하던가 아니면 국가에서 인건비 일부라도
지원한다면 OECD에서 딴지를 걸고 나설라나?
하여튼 민간 기업이 개발한 OS나 DBMS를 우리가 사용해야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고집할 수는 없지만 우선 정부나 공공기관이
국산 솔루션을 앞장서 사용하도록 정책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솔루션의 기능이 업그레이드되어 외산과 경쟁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그 결과 경쟁력이 쌓이면 우리라고 마이크로소프트를 넘볼
수 없겠는가?
이 봄날 아침에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고군분투를 떠올리며
우리 미래가 결코 비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 번 테헤란 벨리에 불을 밝힐 수 있도록 국산 솔루션을
공기업에게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하자. 08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