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의 놀자귀신들

51 지만이 엄마가 떠나던 날!

창강_스테파노 2005. 1. 7. 16:26
 

호롱불 밑에 앉아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국어 숙제를 합니다만 글자가 안 들어옵니다. 

오늘 지만이 엄마가 어디론가 멀리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조금 있다가 온다고 말하는데 훌쩍이며 울고 가시는 모습이 금방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만이 할머니도 마을 어귀에서 우십니다.

지만이는 손에든 5환짜리 지전을 꼬깃거리며 할머니와 멀어져가는 엄마를 번갈아 보다가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덩달아 울기 시작합니다.


“잘 살아야 혀!“

지만이 할머니의 말씀으로 보아 어쩜 안 오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춘식이와 나는 지만이 손에 쥐어진 돈을 바라보며 이따 그림딱지를 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빛나는 일등병’이 있고 ‘천지 바꾸기’가 있는 아직 덜 마른 잉크냄새가 배어있는

그림딱지를 가위로 잘라내어 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헌데 별로 슬픈 일도 아닌 걸 동네 사람들이 방정을 떤다 싶습니다.


뒷문 문풍지가 밤바람에 부르르 떨자 호롱불이 흔들거립니다.

토정비결을 보시는 아버지도 바느질하시는 어머니도 별로 말씀이 없으십니다.

지만이 엄마가 서럽게 우시며 멀리 밭둑길로 사라지던 뒷모습이 떠올라

또다시 기분이 별로 안 좋습니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하얀 달이 찬 바람에 오들 오들 떨고 있습니다.


”쯔쯧! 불쌍한 것 안 잊혀서 어떻게 살랑고?“

측간에 가서 오줌을 누고 돌아오려는데 어머니가 한숨을 쉬십니다.

두 분 말씀으로는 새 아버지를 만나 먼 읍내로 가서 영영 안온다고 합니다.

난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가끔 지만이 어머니가 부엌에서 누룽지를 주었는데 이젠 틀렸습니다.

지난여름 지만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런대로 잘 살고 있었는데

왜 떠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만이를 데리고 가지 않는 것만 해도 정말 다행입니다.


백구 녀석이 킁킁거리며 발밑에서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봅니다.

녀석도 내 기분이 우울한 줄을 잘 아는 참 영리한 놈입니다.

그래도 내일은 지만이가 받은 용돈으로 그림딱지를 살 생각을 하니

다시 기분이 조금은 풀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