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보낸 선물
누구가의 기억 속에 내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
반대로 잊혀진 사람은 불행하다는 걸 의미한다.
일주일에 한번 묵상을 할 때면 내가 맺은 인연의 끈을 하나둘 풀어내본다.
어머니와 자식들을 떠올려 그들이 잘되게 해달라고 기원하고 차츰 형제들의 얼굴을
떠올려 그들의 웃는 모습을 그려본다.
물론 그들에게 건강과 재물과 화평을 내려 주십사고 간구하는 것이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이기적이었을까?
태어날 때부터 받는 것만 배웠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순전히 받을 줄만 알고 베푸는데 인색한 삶에 길들여져 달라고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인연을 맺은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나를 아는 사람들도 일주일에 한번쯤은 나를 기억해줄까?
형제들이 떼돈 벌어 살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저 밥술 떠먹으며 오순도순 살아주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장남이니까 걱정을 두 배로 해야 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들이 잘되어야
어머니 마음이 편할 테고 나 또한 맘이 가벼울 테니 말이다.
이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걱정해주는 마음도 멀리 달아날까?
꼬라지는 더러워도 의리와 정이 많은 동생을 떠올리면 갑자기 그늘진다.
팔팔하던 녀석이 회사 일에 힘들어하고 집안에서도 힘없는 가장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시대의 중년을 바라보는 듯싶어 맘이 편치 않다.
다행히 사오정을 피해 지천명한 녀석이 직장에 붙어 있는 것만도 고맙다.
그런데 이제 계급정년이 닥쳐왔으니 이일을 어찌할거나!
이제 갓 대학 들어가고 고2올라가는 자식들을 놓고 지금 쫓겨나면 뭘 해먹고 살 것인가?
‘에잇! 직장 때려치우고 농사나 짓지 뭐!’
나도 그도 얼핏 하면 스스럼없이 내뱉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을 농사도 없지만 FTA로 농사짓는다고 나서면
상 멍청이라고 흉볼 터이니 오도 가도 못하게 생겼다.
계급정년을 피하는 길은 승진이라는데 요즘 같은 불황에 승진이 이웃집 강아지 이름이던가?
소주한잔에 너털웃음 웃다가도 녀석 생각만 하면 금새 시무룩해지고 가슴이 답답하다.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동생 걱정하는 나는 그럼 대단한가?
것도 아니면서 이세상의 모든 근심을 혼자 짊어진 수도자처럼 신경을 쓰는 것이다.
12월이 끝나 가던 날!
동생에게 승진소식을 물어 볼 수도 없어 혹시나 하고 그 회사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지만 신년하례만 팝업으로 떠오른다.
까짓 거 승진 별거냐며 건강만 하자고 수없이 멜을 보내 위로했지만
내 본심은 승진을 바라고 있었다.
승진이 안 되더라도 2-3년만 더 붙어 있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고민 저 걱정에 오만 근심을 얼굴에 담고 있자니 휴대폰이 울린다.
“형님! 나 승진 했어!”
“머여? 누구여? 막내여? 금방 뭐라 했어?”
탈락한 놈에게 승진 소식 물어 속 긁을까 선을 긋고 눈치만 보며 가슴 졸여왔는데
느닷없는 목소리에 왈칵 눈시울이 붉어져온다.
그래 고생했다!
최고의 선물을 받았으니 이제는 정말 건강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