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구슬치기 하던 날!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뒤란으로 달려갔습니다.
뒤란으로 난 봉창(1)문턱위에 말려 둔 흙구슬이 메추리알처럼 나를 반깁니다.
황토 흙구슬은 몇 번 굴리면 굴러가다가 쪼개지지만 이 구슬은 여간 단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만이 알고 있는 회갈색 진흙으로 만든 구슬은 유리구슬과 부딪혀도 끄떡없습니다.
지만이가 유리구슬 4알을 갖고 있습니다만 구슬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두개는 맹 구슬(2)이고 한개는 꽃이 들어 있고 또 하나는 사기구슬입니다.
지만이가 우리에게 맹 구슬을 한 개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놀이가 끝난 후에는 도로 지만이게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고샅길 양쪽에 구멍을 파고 흙구슬치기를 합니다만 지만이의 구슬이 욕심납니다.
“야! 우리랑 놀자!”
우리보다 2살이나 많은 형들이 다가오자 조금 겁이 납니다.
우리들은 얼른 유리구슬을 주머니에 감추었습니다.
그 형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눈깔사탕만한 쇠 구슬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흙구슬 밖에 없는디~!”
춘식이가 넉살 좋게 흙구슬을 내보이자 세 번 이겨야 자기들 구슬을 준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세 번을 이겨도 형들이 구슬을 줄지 안줄지도 모릅니다만
별로 손해 보는 거래는 아닙니다.
그나마 유리구슬이 들통 나지 않은 것만도 정말 다행입니다.
지만이의 겁먹은 표정도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지만이와 나는 별로 재주가 없어서 번번이 잃기 일쑤입니다.
나와 지만이는 형들에게 흙구슬을 전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흙구슬은 아무래도 구르는 방향도 일직선이 아니라 쇠구슬을 당해낼 수는 없습니다.
까짓것 다시 만들면 되지만 화가 납니다.
놀이라면 춘식이 만큼 잘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춘식이가 쇠구슬과 대적하여 세 번을 이겼으나 형들은 쇠구슬을 주지 않고
흙구슬 한개 만을 줍니다.
흙구슬로 계산해도 세 개를 주어야 하는데 앞뒤가 안 맞습니다.
춘식이가 달라고 졸라대니 못준다며 곧 때릴 것만 같습니다.
나와 지만이는 무서워서 눈치만 살피고 있으나 춘식이는 계속 달랑거립니다.
저러다 한대 얻어맞을 것만 같아 불안합니다.
하지만 춘식이는 하나도 무섭지도 않나 봅니다.
결국 춘식이는 그 형에게 얼굴을 얻어맞고 말았습니다.
춘식이 코에서 코피가 흘러내리자 무섭던 생각이 달아나고 화가 납니다.
나와 지만이는 그 형에게 달려들어 눕혀놓고 올라타 두들겨 패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우리도 잘 모르겠습니다.
힘센 형도 둘이서 달겨드니 별 도리가 없는지 꼼짝 못합니다.
“앗!”
어느 순간에 나머지 형이 달려와 내 얼굴을 여지없이 주먹으로 까고 맙니다.
번갯불이 번쩍 튀고 정신이 없습니다,.
나는 울면서 돌을 집어 들었습니다.
우리는 셋이지만 그 형들을 해보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형들이 도망가자 맞지도 않을 돌을 냅다 던지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니
지만이만 멀쩡하고 나와 춘식이의 코에서는 코피가 흘러내립니다.
지만이가 얼른 달려가 쑥을 뜯어와 손바닥으로 비벼 코를 막아줍니다.
향긋한 쑥 냄새가 머릿속을 맑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아직 덜 마른 눈물사이로 춘식이를 쳐다보니 씨익 웃습니다.
비록 코피는 났지만 지만이도 따라 웃는 모습을 보니 우리가 이긴 듯
기분이 좋아집니다.
** 구슬이 귀하던 그때는 찰흙을 손바닥으로 비벼 구슬을 만들었는데 깨지지 않도록 지푸라기를 잘게 썰어 섞은 다음 만들기도 하였다. 주머니 속에서 부딪히는 구슬 소리에 부자가 된 듯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
1) 봉창 : 창호지로 바른 작은 창의 방언
2) 맹구슬 : 무늬가 없이 아무것도 섞지 않은 구슬로 공기방울이 맺혀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