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땅 따먹기
학교가 파하자 당산나무 밑에 책보를 던져놓고 땅뺏기(1) 놀이를 하였습니다.
땅바닥에 커다란 네모를 그린다음 튕기기 좋은 사금파리(2)를 주어 와 한 귀퉁이씩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가운데 손가락에 사금파리를 끼우고 퉁겨 상대방 사금파리를 먼저 맞추는 사람이
엄지손가락을 축으로 부채꼴 땅을 그려 나가는 놀이입니다.
춘식이의 땅도 지만이의 땅도 뭉게구름처럼 커져 갑니다.
가장 먼저 넓은 땅을 차지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다.
항상 춘식이가 잘하는데 오늘은 신기하리만치 지만이 땅이 제일 큽니다.
“안 맞았어!”
“맞았어! 삼식아 맞았지이?~”
지만이가 춘식이 사금파리를 맞추었으나 춘식이가 안 맞았다고 우기며 나에게 물어옵니다.
분명히 맞았는데 안 맞았다고 우기는 춘식이가 정말 얄밉습니다.
난 양심이 찔리지만 안 맞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춘식이가 얄밉지만 지만이의 땅이 워낙 커서 춘식이 편을 들고 만 것입니다.
“나 안 해!”
억울한 지만이가 그만하겠다고 일어섭니다.
춘식이는 고분고분 하지 않는 지만이 이마를 쥐어박고 맙니다.
우리가 싸울 때는 항상 지만이가 우는 것으로 끝납니다.
당산나무 위의 매미 소리가 지만이의 울음소리에 묻혀 힘없이 들립니다.
결국 산통이 다 깨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어깨에 책보를 매고 뽀루퉁하니 산두(3) 밭둑길을 따라 집으로 걸어 왔습니다.
메뚜기 떼들이 우리들 앞에서 푸르르 날며 흩어집니다.
아침까지 멀쩡하던 동네 입구의 논 한구석이 마치 기계독 오른 머리처럼 텅 비어있습니다.
올벼쌀을 만들기 위해 나락을 베어낸 논바닥이 햇빛을 받아 촉촉하게 빛납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자꾸 지만이에게 미안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책보를 던져놓고 뒤란으로 달려가 항아리에 담가 놓은 감을 꺼냈습니다.
떫은맛을 우려내기 위해 담가놓은 항아리 뚜껑을 열자 구린내가 납니다.
“삼식~아!
감을 먹으며 숙제를 하고 있으니 춘식이가 불러냅니다.
놀자 귀신이 붙은 나는 벌떡 일어나 돌아보니 지만이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있습니다.
아까의 미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우리들은 향교로 향했습니다.
향교 입구에는 몇 백 년은 된성싶은 은행나무에 노란 은행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풀밭에 숨어있는 은행 알을 찾아내 발로 비비자 고약한 구린내가 진동을 합니다.
개울로 내려가 깨끗이 씻어 삼각형 모양의 은행 알을 골라 지만이에게 주었습니다.
해질녘에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부엌에 들어가 각자 은행을 내놓고 굽기 시작 했습니다.
지만이를 쳐다보며 씽긋 웃자 녀석도 따라 웃습니다.
아궁이의 불빛에 비추인 지만이의 바알간 얼굴이 참 예쁘게 느껴집니다.
톡 톡 튀는 소리가 나 얼른 꺼내보니 노란 은행 알이 반짝이며 엿보고 있습니다.
1) 땅뺏기 : 땅따기‧땅따먹기‧땅재기‧땅재먹기. 땅빼앗기
2) 사금파리 : 사기그릇의 깨어진 작은 조각
3) 산두 : 밭벼의 남쪽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