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대목장터에 서서
밤새 달려온 고향에 추석 대목장이 열렸다.
장터에는 허리가 구부정한 어머니 연세의 노인들이 대목장을 보느라 분주하다.
짜그라질 듯 녹슨 자전거를 끌고 절뚝거리는 어머니를 뒤따랐다.
당신이 굳이 함께 가기를 고집하시는 걸 내 모를 바 아니다.
그것은 동네사람들에게 서울 큰아들이라며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그 장터 속을 들여다 본지가 어언 30여년이 넘은성싶다.
무심날이면 텅 빈 공간에 기둥들만이 뚱하니 자리를 지키던 곳!
가을이면 어른들이 모여들어 초가지붕을 잇던 곳에 북적대는 사람들이 발에 치인다.
“지난 장날 쓰리꾼이 목걸이도 따가부렀어야!”
츄리닝 주머니에서 반쯤 얼굴을 내민 지갑을 어머니께 건네주자 고쟁이 속에 감춘다.
이런 촌에까지 멀끔한 떼기꾼이 나타나 순박한 시골사람들을 울려댄단다.
“우리 아들이어라우!”
올벼쌀 한 되 사며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
고향 1년 선배 모친이라는 말에 자세히 보니 주름살 속에 흔적이 남아있다.
여기저기 기웃기웃 밤 한 되, 토란 조금, 꼬막 1되를 자전거에 실으니 정말 추석이다.
“우메! 아픈거~이!”
좁은 길목 전(1)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흥정을 하는 할머니 등에 자전거 패달이 닿자
아픈 시늉을 한다.
“워메! 미안시럽소 잉!”
나도 모르게 고향 말이 자연스레 쏟아져 나온다.
“악아! 빗지락 한개 사올랑께 여그서 기달려라 잉!”
붐비는 사람들 속으로 멀어지는 어머니를 보니 모두가 어머니다.
‘그나저나 먼 사람들이 요리 많을까?’
젊디젊은 부부가 나주 배, 대구사과를 아무렇게나 산더미처럼 늘어놓은 전에는
사람들이 마치 ‘깜짝세일‘에 몰려들 듯 구름처럼 붙어있다.
“나! 많이 샀응께 맛배기 한나 줘 이잉!”
할머니가 한마디 하자 넉살 좋은 총각이 벌레 먹은 사과 한 개를 건네준다.
감지덕지 흡족해하는 할머니의 표정에서 이 가을이 풍성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진(2)!”
붐비는 장터 한구석에서 자전거를 받쳐놓고 잠시 상념에 젖으니 숨바꼭질하던
춘식이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리니 건어물 가게의 여 쥔이 미역을 흥정하느라 분주하다.
몇 해 전 암으로 죽은 동창에게 시집온 3년 후배 점순이었다.
살만하게 되었다더니 꾀죄죄하던 얼굴이 확 피어나고 루즈가 제법 어울린다.
‘죽은 사람만 서러운 것이여! 산사람은 어떻게든 사는 것이여!’
1) 전 : 물건을 팔기위에 땅바닥에 벌여 놓은 가게
2) 진 : 숨바꼭질에서 술래가 찾으러 간 사이 술래 집을 찍으며 외치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