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의 놀자귀신들

34. 철로에 놓은 못!

창강_스테파노 2004. 9. 23. 13:00
 

방학이 끝난 교실에 들어서니 퀘퀘한 곰팡이 냄새가 납니다.

진흙으로 만든 탱크와 일기를 선생님께 내고 대청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도구 함을 열자 방학식 날에 넣어 두었던 걸레가 이상하게 미끌미끌합니다.


걸레를 씻으러 나와 해찰(1)을 하다가 독하기로 유명한 선생님께 들켜 코를 쥐어뜯기고

교실로 들어 왔습니다.

책상을 뒤로 밀치고 물을 잔뜩 묻혀 교실마루를 엎드려 밀고 다니며

한바탕 소란을 피운 후 공부를 시작 합니다만 머리에 들어오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몰래 돼지우리에서 빼낸 못 때문입니다. 


춘식이도 나처럼 자꾸 창밖만 내다봅니다.

학교가 파하자 말없이 침을 꼴깍 삼키며 비장한 각오로 철길로 향했습니다.

교실 유리창 너머로 보아왔던 철도가 처음 가는 길이어서인지 멀게만 느껴집니다.

신작로를 따라 후미끼리(2)에 도착하니 차단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고

기름먹은 침향이 향기롭게 코끝을 스칩니다.

.

철길로 걸어가면 잡혀간다는 말이 떠올라 겁이 났지만 호기를 부리며

주머니 속의 못을 만지작거리며 모두들 말없이 걸었습니다.

갑자기 뒤에서 기차가 부르르 달려 올 듯만 싶어 불안합니다.


동네에서 잘 안 보이는 곳에 이르러 안심을 하고 철로에 귀를 대어 보았습니다.

철로는 뜨겁기만 할 뿐 아무런 소리도 안 들립니다.

조심스레 못을 꺼내 철로 위에 얹어 놓고 둑 밑으로 내려 왔습니다.


하늘에서는 늦여름의 태양이 마지막 몸부림을 칩니다.

배도 고프지만 엄청 목이 마릅니다.

농수로에 엎드려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나니 허기가 가십니다.


기차가 오는지 느낌이 이상하여 우리는 모두 엎드려 몸을 숨겼습니다.

"뛔~엣!"

“땡! 땡! 땡!"

아니나 다를까 고함지르는 기차소리와 건널목의 종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려옵니다.

혹시 기관사가 기차를 세우고 우릴 잡아갈까봐 불안하기도 합니다만

그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기차가 까파질까(3) 두렵습니다.


산모퉁이에서 돌아 나오는 시커먼 기차가 철로를 벗어나 우리를 덮칠 것만 같아

간이 콩알만 해졌습니다.

하지만 못이 어디로 튀는지 눈에 힘을 주고 꼬나보았습니다.


기차는 우레 같은 소리를 내며 하얀 김을 있는 대로 쏟아 내더니 우리를 비웃고

지나갑니다.

난 무서워서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한바탕의 폭풍과 땅이 흔들린 후 평온이 되찾아 왔습니다.


우리는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며 철길로 올라갔습니다.

못들이 어디로 튀었는지 보이지가 않습니다.

“앗! 내것 여깄다!”

이리 저리 찾아보았지만 결국 춘식이 것만 발견했습니다.

사실 춘식이가 먼저 발견했기 때문에 춘식이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학교를 지나 집으로 오는 길이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춘식이는 배도 안 고픈지 연신 재잘대며 말이 많습니다.

‘짜아식! 좋으면 저만 좋지 먼 말이 많아?’

약이 올라 미치겠습니다.


1) 해찰 : 버릇없음, 경망스러움, 쓸데없이 다른 짓을 함

2) 후미끼리 : 건널목의 일본 말

3) 까파지다 : 전복되거나 뒤집어지는 것을 나타내는 전라도 사투리

 

** 요즘처럼 맥가이버 칼이 없던 60년대에는 누구나 손칼을 갖고싶어 했다.  손칼로 탱자나무 가지를 잘라 고무줄 새총을 만들 수도 기 때문이었다. 동네 애들은 긴 못을 철로에서 늘려 칼을 만들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