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에 빠지고보니!
우리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그러니까 일요일에는 당구를 친다.
누군가 인생의 낙이 뭐냐고 물으면 감히 당구라고 할 만큼 늦게 배운 도둑이
소도둑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당구를 아주 빼어나게 잘 치는 것도 아니고 200 내외의 물 당구다.
그 이면에는 나이 들어 이름을 불러주는 친구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구를 치는 날은 셋 중에 한사람은 반드시 삐지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세 사람 전부 일등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1등한 사람은 입이 귀 밑까지 찢어지고 2등한 사람은 꼴찌를 바라보며 위안을 삼고
꼴찌는 똥 씹은 얼굴로 결국 삐지고 마는 것이다.
남쪽에서 어찌 어찌 서울이라는 곳에 흘러 들어와 앞만 보며 달려 온지 어언 30여년!
치열한 생존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바이벌 게임을 하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아스라이 잊었던 친구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수소문을 해보니 꽤나 많은 동창 녀석들이 서울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학창시절 배짱이 맞았던 녀석들과 공유할 놀이를 찾았으나 마땅치가 않았다.
한 녀석은 바둑을 두지만 한 녀석은 잼병이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만 두 녀석은 별로 술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셋 중 둘은 산을 좋아하는데 한 녀석은 싫어한다.
하지만 산처럼 정력에 좋은 것이 없다고 유혹하여 공통분모를 찾아냈다.
우리는 매주 관악산을 오른다.
한 녀석은 수원에서 올라오고 또 한 녀석은 상계동에서 빠지지 않고 올만큼
산에 빠졌지만 실은 산행 후에 갖는 당구 게임에 미쳐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목탁바위 신에게 당구가 잘 되도록 소원을 비는 현대판 무지랭이들이다.
소위 목탁바위는 사당에서 올라가면 마당바위 못미처 위태롭게 놓인 바위를 말하는데
그 바위를 붙들고 당구가 잘 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며 배꼽이 빠지도록 웃곤 하는
우리가 이름붙인 바위다.
“오늘은 져도 삐지기 없기다 이잉~!”
모두들 희망에 부풀어 시작은 기분 좋게 출발한다.
‘네 비록 시작은 미약하나 그 결과는 창대하리라‘ 라는 말과는 반대로
시작은 창대한데 그 결과는 미약한 사람이 꼭 나오게 되어있는 것이다.
웃고 시작하여 어느 순간 무너지기 시작하면 말수가 적어지고
그러다가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면 와르르 무너져 꼴찌를 하고 만다.
게임비가 많아서가 아니라 승부욕에 집착하다보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언젠가 노인들이 장기를 두면서 다투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이해가 된다.
“야! 너 입 삐뚤어진다 조심해라“
“에라 짜슥들아! 우리 50넘은 사람 맞아?”
상대방이 조준하여 치려는 순간 당구병법의 전술이라며 ‘구찌겐세이(1)’를 놓는 것이다.
그 순간 흔들리지 않아야 되는데 정신집중 게임이라 자칫 흔들리기 일쑤다.
물론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르면 주변의 변화를 초월할 수 있지만 쉽지가 않다.
난 ‘구찌겐세이’가 심한 편이다.
궁둥이를 쑥 빼고 치는 녀석에게는 Sexy하다며 김을 빼놓기도 하고
‘움마니밤메음’을 주문처럼 외워 벌점을 유도하기도 한다.
우리들은 그때마다 웃어대지만 결국 패하고 나면 기분이 더럽다.
다시는 안 놀아 줄 것처럼 토라지지만 결국 언제 그랬느냐는 듯 또다시 친구를 찾는다.
나이 들면 어린애가 된다는데 맞는가 보다.
1) 구찌겐세이 : 말로 훼방을 놓는 것을 말하며 일본 말임